1993년 자유로에서 판문점까지 도로신설 및 확장공사가 추진되면서 임진강을 건너는 교량을 건설했다.

통일대교 남문

설치 배경

6·25전쟁으로 임진강을 남북으로 건너는 다리는 모두 다 파괴되었다. 전쟁 이후에는 임진강철교의 하행선을 복원해 차량용으로 보강해서 판문점 왕래 및 군사 목적으로 사용했다. 한 방향 차량이 진입하면 다른 쪽에 서는 대기해야 하는 일방통행으로 매우 불편했다. 자유로에서 판문점까지 도로신설 및 확장공사가 1993년에 추진되면서 임진강을 건너는 다리를 건설하게 됐다.

도로 건설

통일대교는 1993.12~1998.6.15일까지 공사가 진행됐고 길이 900m, 폭 24m, 왕복 4차로 778억원 사업비 소요됐다. 이 교량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육군 제1사단이 시행했고 건설 당시에는 ‘자유대교’, ‘임진대교’로 불리다가 ‘통일대교’라는 이름으로 개통됐다.

도로 이용

민통선 주민과 일반인은 판문점과 민통선 이북 지역 출입을 위해서 임진강 철교에 임시로 지어진 자유의 다리를 이용했다. 통일대교가 개통되고는 북한과의 회담이나 개성공단 출입을 위해서는 통일대교를 이용했고 남북한의 각종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언론사의 주요 촬영장소가 되었다. 개통 다음 날에는 통일대교를 이용해 현대그룹 정주영 전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했으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길에 오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환송 행사가 개최됐다.

정주영 전회장 소떼 방북

1998년 6월 16일과 10월 27일 2차례에 걸쳐 정주영 전현대그룹회장은 총 1,001마리의 소 떼를 몰고 통일대교를 건너북한을 방문했다. 그의 방북은 17살 때 북한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 친가 에서 부친의 소를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가출한 실향민의 금의환향이기도 했지만 10여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트는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2차 방북 때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고 2차 방북 직후인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이시작됐다. 그리고 2000년 6월 15일, 분단 이후 최초의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고 같은 해 8월 남북은 개성공단 건립에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