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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1장 [전체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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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juwiki 작성일 24-01-24 20:55 조회 1,77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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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나제 동맹군의 한강유역 진출과 독산성 전투 -

 

장수왕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433년 백제의 비유왕은 신라 눌지마립간과 나제동맹을 체결한다. 동맹을 통해 고구려의 남진을 막는데 성공한 백제와 신라는 각각 성왕, 진흥왕이 즉위하며 적극적인 팽창 정책을 펼친다.

 

팽창정책의 서막을 알린 것이 548년에 이뤄진 독산성전투이다. 정월에 고구려 양원왕(545~559)이 예()의 군사 6천 명을 동원하여 한북(漢北)에 있는 백제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다. 이에 백제는 신라에 구원군을 요청하였고, 신라는 장군 주령과 군사 3천을 파견해 고구려군을 격퇴하는데 성공한다.

 

독산성의 위치는 현재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이는 장수왕의 남진정책과 임진강’ 2편에서 다루었던, 475년 백제가 한성을 함락당한 뒤 한강 유역과 임진강-예성강 남안을 계속 영유하였느냐, 아니면 고구려가 한강 이남의 중원 고구려비가 있는 지역까지 남하하여 영유하였는가 하는 논쟁과 관련이 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독산성은 충남 예산군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근거가 되는 것이 일본서기(日本書紀)였다. 일본서기19, 흠명천황(欽明天皇) 9(548) 4월조에 고구려가 침입한 것으로 나오는 마진성(馬津城)을 백제가 멸망한 후 당이 설치한 현에 마진현은 본래 고산이다(馬津縣本孤山).”이라고 한 것에서 착안하였다. ‘고산(孤山)’= ‘독산(獨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충남 예산은 6세기 말 고구려와 백제의 주 전장인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충청북도 증편군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신라의 구원군이 파견되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그리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신라본기는 독산성 전투가 한북(漢北)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때의 한북은 한강 이북을 의미하는데, 이를 그대로 신뢰한다면 백제가 한강 유역을 계속해서 영유하고 있었던 것이 된다.

 

하지만 548년에는 고구려가 이미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남하한 상태이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필자가 참고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면 김영관의 견해에 따라 2년 뒤인 550년 정월에 고구려가 차지한 도살성을 백제와 신라가 공격하는 상황을 보면 도살성 부근에서 찾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살성에서 가까운 청주 근처가 아닐까 한다.

 

또한 백제 독산성을 공격하는데 주력이 된 것은 예의 6천 병력이다. 고구려의 사주를 받아 공격을 한 것인데, 이는 백제 동성왕과 무령왕 대에 말갈이 고구려와 모의하여 백제를 치는 것과 동일한 양상이다. 여기서 예인과 말갈은 모두 같은 부류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독산성은 말갈 또는 예인의 근거지인 강원도 지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산성이 충남 예산에 위치해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독산성 전투 이후 백제 성왕은 장군 달기達己에게 군사 1만 명을 주어 고구려의 도살성을 쳐서 함락시켰다. 도살성은 대략 청주 북쪽의 증평-괴산 또는 충청남도 천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자 고구려는 두 달 후에 백제 금현성을 쳐서 함락시켰다. 금현성은 세종시 전의면-전동면 일대로 비정된다. 백제와 고구려는 두 성을 사이에 두고 격돌하는데, 이 틈을 타 신라가 두 성을 모두 차지하고, 여세를 몰아서 낭성(청주)와 고구려 남진의 거점인 국원(충주)를 확보했다. 이로써 금강-미호천 일대와 남한강 상류를 확보한 신라는 한강 유역으로의 북진의 기반을 마련한다.

 

 사진자료

독산성.jpg

독산성의 위치 후보지 <구글맵>

 

도살금현성.jpg

도살성과 금현성의 위치 <구글맵>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9545, (203.12.2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1456, (2023.12.2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9521(2023.12.2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7952, (2023.12.26.)

국내논문, 윤성호, 신라의 임진강 유역 친출과 대고구려 경계의 형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국내논문, 김영관, 웅진시대 백제와 고구려의 전쟁 양상과 영역, 한국고대사탐구 34, 2020

 

이서진의 '임진강 전쟁 역사'


1편 - 임진강의 전략적 중요성 -

제1회 한강 하구의 가치와 임진강의 지형적 특성

제2회 임진강을 중심으로 한 교통로

제3회 파주의 요충 중에 요충지, 파주와 적성

제4회 임진강 유역 삼국의 관방시설

제5회 백제를 중심으로

제6회 고구려와 신라를 중심으로 

 

제2편- 광개토대왕의 6년 전쟁

제7회 6년전쟁의 배경

제8회 고구려의 392년 공세

제9회  관미성 탈환을 위한 백제의 반격과 고구려의 396년 공세

 

제3편 장수왕의 남진정책과 임진강

제10회 평양천도와 나제 동맹

제11회 한성로와 장수왕의 한성 공략 

제12회 고구려 퇴각과 임진강 방어선의 확립

 

4편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13회 나제 동맹군의 한강유역 진출과 독산성 전투 

제14회 나제 동맹의 결렬과 관산성 전투

제15회 임진강 유역 신라의 관방시설과 고구려의 새로운 공세

제16회 낭비성 전투

제17회 낭비성 전투의 의의

제18회 고구려의 마지막 공세

제19회 662년 임진강 전투

 

제5편 나당전쟁과 임진강

제20회 661년~670년 사이이 정세

제21회 고구려 멸망부터 나당 전쟁 발발까지

제22회  나당전쟁의 전개

제23회 임진강 혈투

24회 천성 전투와 매소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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