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2장 [전체14회] > 눈에띈 역사스크랩

본문 바로가기

눈에띈 역사스크랩

lta-title.png

4편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2장 [전체14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pajuwiki
댓글 0건 조회 1,611회 작성일 24-01-24 21:04

본문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나제 동맹의 결렬과 관산성 전투-

 

550년 도살성과 금현성을 점령하고 충주와 청주까지 장악하는데 성공한 신라는 백제군과 연합해 551년 고구려의 내분을 틈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한다. 백제는 한강 하류 6군을, 신라는 한강 상류 10군을 확보했다

 

당시 고구려는 돌궐과의 전쟁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신라에 동맹을 제의한다. 동맹의 내용인즉, 경기도와 황해도, 한반도 북서부 등 진흥왕이 새로이 개척한 땅을 신라의 영토로 용인해 주는 대신 고구려에 대한 적대 행위를 중단할 것이었다

 

백제 역시 신라에게 함께 평양성을 공격하자고 제의하는데, 신라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백제가 점령한 한강 하류 지역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백제가 점령한 한강 하류의 6군은 안성천 유역의 한강 이남지역에서 개성, 교하, 포천, 철원에 이르는 임진강 하류와 한탄강 일대인 것으로 파악된다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한 신라는 553년 신주를 설치하는데, 한강 하구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파주 지역으로 먼저 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수군의 진입을 막고 신라가 서해안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임진강 하구는 전략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통제하는 요충지가 파주 오두산성인데, 오두산성의 북서쪽으로 연결되는 능선에 위치한 파주 성동리 고분군은 한강 이북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라 유적 중 하나임이 확인되었다 . 따라서 신라는 임진강 유역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오두산성 일대에 가장 먼저 진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553년 즈음에는 신라가 한강 유역, 특히 서해안과 인접한 지역까지 완전히 통제했다고 확언하기는 힘들다. 553년 이후로도 백제는 서해안 안양천 유역의 교통로를 통해 고구려의 백합의 요새를, 고구려는 55410월에 백제의 웅천성을 공격하는 등 양국은 서로 공방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가 중국의 북제에 사신을 파견하는 564년 즈음이 되어야 신라가 한강 유역을 완전히 영유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신라의 배신에 분노한 성왕은 비전파 대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의 전세를 확인하고신라가 설치한 신주와 소백산맥 일대의 주요 교통로를 일시에 차단하기 위해 554관산성을 공격한다

 

관산성은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에 위치해 있었는데, 한강 하류 지역과 신라 본토를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그러나 김무력이 이끄는 신라군에게 백제는 성왕이 전사했을 뿐만 아니라 좌평 4, 군졸 약 3만 명이 전사하는 등 참패를 당했다.

 

한강 하류 지역을 점령한 신라 진흥왕은 555년 비사벌(현재 경남 창녕)에 완산주를 설치해 대가야를 압박하는 한편 강역을 확정하고자 북한산을 순행한다. 이어 556함경남도 안변까지 진출해 비열홀주를 설치하고, 이어 북한산주를 설치했다.

 

이를 통해 적어도 556년 이후부터 한강 하류~임진강 유역에서 신라의 영역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술했듯, 당시 신라의 정확한 진출 범위를 파악하는 것은 힘들다. 특히 임진강 유역의 경우, 신라의 유물들이 발견되긴 하지만 고구려와의 전투로 전선이 유동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임진강을 고구려와 신라의 완전한 경계로 확언하기는 힘들다.

 

고구려와 신라 국경의 유동성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568년 신라가 북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로 주치소가 이동한 점이다. 주치의 이동이 반드시 영역변동과 일치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고구려와 경계를 마주한 상황에서 신라의 선제적 방어선 후퇴와 무관하지 않다

 

고구려는 568년 이후 지속적으로 신라 북쪽 변경을 공격하는데, ‘장수왕의 남진정책과 임진강 3에서 다룬 온달이 대표적이다.

 

사진자료

한강6군.jpg

백제가 회복한 한강 하류 6군 위치 <구글맵> 

 

옹천성백합.jpg

백제 웅천성의 위치 + 고구려 백합 요새 <구글맵>

 

비열홀.jpg

함경도 안변 인근의 신라 영토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B%9D%BC, (2023.12.30.)>

 

참고자료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A7%84%ED%9D%A5%EC%99%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5013, (2023.12.2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4867, (2023.12.2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4740, (2023.12.26.)

한국사 데이터베이스https://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levelId=sg_004_0040_0230, (2023.12.26.)

국내논문, 윤성호, 신라의 임진강 유역 친출과 대고구려 경계의 형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4편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13회 나제 동맹군의 한강유역 진출과 독산성 전투 

제14회 나제 동맹의 결렬과 관산성 전투

제15회 임진강 유역 신라의 관방시설과 고구려의 새로운 공세

제16회 낭비성 전투

제17회 낭비성 전투의 의의

제18회 고구려의 마지막 공세

제19회 662년 임진강 전투

 

1편 - 임진강의 전략적 중요성 -

제1회 한강 하구의 가치와 임진강의 지형적 특성

제2회 임진강을 중심으로 한 교통로

제3회 파주의 요충 중에 요충지, 파주와 적성

제4회 임진강 유역 삼국의 관방시설

제5회 백제를 중심으로

제6회 고구려와 신라를 중심으로 

 

제2편- 광개토대왕의 6년 전쟁

제7회 6년전쟁의 배경

제8회 고구려의 392년 공세

제9회  관미성 탈환을 위한 백제의 반격과 고구려의 396년 공세

 

제3편 장수왕의 남진정책과 임진강

제10회 평양천도와 나제 동맹

제11회 한성로와 장수왕의 한성 공략 

제12회 고구려 퇴각과 임진강 방어선의 확립


[이 게시물은 pajuwiki님에 의해 2024-03-22 15:07:29 파주지식공유에서 이동 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회사명: 파주위키 대표:이기상 사업자등록번호:772-94-01364 개인정보관리책임자:이기상
TEL. 031-948-9948 Email. pajuwiki@gmail.com 파주시 금정3길12,인학빌딩2층

Copyright © paju.wiki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