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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임진강의 전략적 중요성 1장 [전체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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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juwiki
댓글 0건 조회 2,190회 작성일 24-01-0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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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위키가 추진하는 '임진강 스토리 공모'에 조리읍 봉일천에 거주하는 이서진 역사학과 학생이 '임진강 전쟁 역사'를 응모했다. 


임진강의 전쟁역사는 고구려시대부터 임진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영토 확장 전쟁 과정을 스토리 방식으로 기술했다. 


이 내용은 임진강 유역의 전략적 중요성 6편, 영락6년 전쟁 3편, 장수왕의 남진 정책 3편,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7편, 나당전쟁 5편 등 전체 24편으로 나누어 게시할 예정이다.


연재 게시는 응모자의 편의를 위해 공모작 전체를 파주위키가 접수해 연재 방식으로 매일 게시한다.[파주위키]

 

 

예로부터 임진강이 속한 한강 하구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으며(연천 전곡리 유적 등)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이어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도 중요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한강 유역은 한반도의 X자형 교통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사방으로 연결되어 육상 교통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해상교통로로서의 중요성도 만만치 않았는데, 한강 하구는 만이 발달하고 예성강, 한강, 임진강 등의 하구가 밀집되어 경기만을 형성하며, 내륙 수로와 연안 수로가 교차하는 곳이었다.

 

강화도와 교동도, 석모도, 영종도, 연평도 등의 섬들이 연안지대와 접하여 있기 때문에 연안 항해가 크게 발달했다. 옛날에는 항해술이 발전하지 않아 항해 도중 폭풍우를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간중간 기항할 수 있는 육지가 많이 있을수록 유리했다. 한강 하구는 이러한 요건도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통의 허브 역할을 했다.

 

전략적으로는 한강 하구가 위치한 경기만은 북쪽으로 해주만, 남쪽으로 아산만과 접하고 있어 감제, 통제가 가능했고 선진 문물이 들어오는 통로 역할을 했다.

 

이러한 가치를 지닌 한강 하구를 통제하기 위해선 임진강과 예성강이 필수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임진강 일대는 한강 유역 방어의 마지노선에 해당된다. 임진강과 한강 사이에는 일명 한북정맥이라고 부르는 산줄기가 놓여 있어 자연 방어선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추가령구조곡과 양주분지는 한북정맥을 관통하는 회랑지대를 이루며 임진강유역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통로 전면에 위치한 임진강 유역이 한강유역 방어의 최후 거점지역으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한강 이북의 삼국시대 유적은 대부분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임진강은 용암대지가 침식하여 백리장성이라고도 불리는, 하안과 수면이 수직으로 접하는 절벽(단애)가 수십m의 높이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때문에 폭이 넓은 하류의 경우엔 최대 2000m에 달하지만, 고랑포 상류로 갈수록 폭이 좁고 수심이 얕은 여울이 다수 존재한다.

임진각성곽.png

 

임진강 북안에는 주요 길목마다 고구려성이 구축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호로고루는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는 감조구간(減潮區間)이 상류에 위치하여 배를 타지 않고 임진강을 도강할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에 접하여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호로하 부근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의 전투기록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호로고루(고구려)와 육계토성(신라)가 위치한 지역은 갈수기에 사람이 걸어 건널 수 있을 정도인데, 단 임진강은 강 양옆에 뻘이나 단애가 발달되어있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도하가 용이한 것은 아니다. 특히 군대가 도하하기 위한 장소는 몇 안되기 때문에 삼국은 도하 지역에 관방, 보루 시설을 설치하여 서로를 견제했다.

 

임진강은 강안의 침식된 하곡이나 소하천 합류지점에서 포구가 형성되는데, 도하하기가 가장 용이한 지역이 파주 덕진산성 유적에서 임진강 상류로 올라가면 있는 임진나루이다. 이 지역은 강폭과 함께 양옆의 뻘도 좁아지거니와 임진강이 구릉에 막혀 북쪽으로 곡류하는 지점이다

 

임진나루주변은 강에 의하여 침식된 단애를 이루지만 나루가 있는 곳은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하천에 의하여 침식되어 ‘V’자형의 통로가 형성되어 강으로의 접근이 용이하다.

 

 사진자료

임진강단애.png 

임진강 단애 <연천군청>

 

 

한북정맥.png 

추가령구조곡과 한북정맥<구글어스>

 

임진강문화권.png

임진강 문화권<경기문화재단>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654, (2023.12.2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7810, (2023.12.2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6246, (2023.12.2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2065(2023.12.2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0967(2023.12.28.)

국내논문, 박종서, 고구려 장수왕대 한강유역 진출과 南進路 운영, 서울과 역사 113서울역사편찬원 지음

 

국내논문, 윤성호, 신라의 임진강 유역 친출과 대고구려 경계의 형성, 한국고대사탐구 41, 2022

 

 

연재순서

- 임진강 유역의 전략적 중요성 

- 영락6년 전쟁

- 장수왕의 남진 정책과 임진강

-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 나당전쟁과 임진강



이서진의 '임진강 전쟁 역사'


1편 - 임진강의 전략적 중요성 -

제1회 한강 하구의 가치와 임진강의 지형적 특성

제2회 임진강을 중심으로 한 교통로

제3회 파주의 요충 중에 요충지, 파주와 적성

제4회 임진강 유역 삼국의 관방시설

제5회 백제를 중심으로

제6회 고구려와 신라를 중심으로 

 

제2편- 광개토대왕의 6년 전쟁

제7회 6년전쟁의 배경

제8회 고구려의 392년 공세

제9회  관미성 탈환을 위한 백제의 반격과 고구려의 396년 공세

 

제3편 장수왕의 남진정책과 임진강

제10회 평양천도와 나제 동맹

제11회 한성로와 장수왕의 한성 공략 

제12회 고구려 퇴각과 임진강 방어선의 확립

 

4편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13회 나제 동맹군의 한강유역 진출과 독산성 전투 

제14회 나제 동맹의 결렬과 관산성 전투

제15회 임진강 유역 신라의 관방시설과 고구려의 새로운 공세

제16회 낭비성 전투

제17회 낭비성 전투의 의의

제18회 고구려의 마지막 공세

제19회 662년 임진강 전투

 

제5편 나당전쟁과 임진강

제20회 661년~670년 사이이 정세

제21회 고구려 멸망부터 나당 전쟁 발발까지

제22회  나당전쟁의 전개

제23회 임진강 혈투

24회 천성 전투와 매소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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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 역사학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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