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의 군사유적지 - 임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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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이윤희 파주지역문화연구소장이 '임진강 스토리 공모' 를 후원하기 위해 투고한 '고대국가시기 임진강유역 관방 유적 체계'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문산읍 임진리에 위치한 임진진은 임진강 남안의 장산진과 근접한 곳에 있는 임진나루터에 위치한 진鎭이다. 임진진은 장산진과 더불어 파주와 장단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상의 진으로서 덕진산성의 상류에 위치한다.
기록에 나타난 임진진의 시설과 인원 현황을 보면 진 주위에 석성 133보步, 성첩 28간의 성곽이 있었으며 건물로는 성문城門(鎭西門), 성루城樓(臨璧樓) 8간, 내사 20간, 외사 32간, 창고 4간, 기수청旗手廳 3간 반, 진아문 3간, 진서문루 8간, 군보軍補 2간, 잔부번소津夫番所 4간 반 등이 있었으며 인근에 고려시대에는 도솔우너兜率院, 조선시대에는 임진정臨津亭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군기軍器로는 조총 180자루, 환도 255자루, 화약 89근, 철환 4,960개를 보유했으며 군량으로는 원향元餉 1,500석, 연천 이전미移轉米 184석 4두 2승, 풍덕 이전미 241석 4두 5승, 둔세조屯稅租 180석 9두, 위전답결복位田畓結復 12結 93負 이다. 선박은 津船 10척에 鎭夫 54명을 보유하였으며 진내의 병력으로 代將 1명, 城門將 1명, 書員 1명, 通引 2명, 庫直 1명, 及唱 2명, 旗手 4명, 吹手 3명, 柴場直 1명, 山直 1명, 水尺軍 1명, 牙兵 30명 등이다.
이상 기록을 보면 진서문은 임진나루터출입구에 설치하여 통행인을 검문하던 관문으로 1층은 통과문이고 2층은 8간의 성루城樓로 암벽루 현판이 걸려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진서문 좌우로 성벽을 축조하였고 성내에는 아문과 내사, 창고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인근 언덕위에 임진정이 위치해 임진강을 한 눈에 조망 할 수 있도록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루를 비롯한 건물 일체가 임란시 소실되었다가 조선후기 영조때 모두 복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는 성곽을 비롯한 건물터가 완전히 유실되었고 현재 성 안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부대 주변 언덕에 건물에 사용되었던 석재 일부와 초석이 발견되고 있으며 조선시대 기와편과 백자편 등이 채집되고 있다.
임진진은 방어 기능의 성격 보다도 나루로서의 기능이 더 강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임진나루는 임진강 전 구간에 걸쳐 있던 많은 나루 중 파주-장단-개성으로 연결하는 고려, 조선시대 중요 교통로였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왕조는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임진도는 북방으로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길목으로 중국의 사신이 왕래하는 외교로이자 조선군의 북정시에는 군대 이동의 군사로가 되기도 하였다.
이윤희 - 임진강유역의 군사유적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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