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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광개토태왕의 6년 전쟁 1장[전체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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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juwiki
댓글 2건 조회 5,206회 작성일 24-01-12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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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의 6년 전쟁
-6년 전쟁의 배경-

 

고대국가로서 제일 먼저 발돋움한 고구려는 3세기 말~ 4세기 초에 중국에서 벌어진, 516국이라는 미증유의 혼란을 틈타 적극적인 대외 팽창 정책을 펼친다. 311년 압록강 하구의 서안평을 점령했으며, 미천왕은 313년에는 낙랑군을, 314년에는 대방군을 공격해 점령함으로써 한반도 서북부 지역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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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군이 대방을 공격하자 대방(황해도 지역)군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백제에게 구원요청을 보냈는데, 백제의 책계왕은 이를 수락하고 군대를 파병한다. 비록 대방을 합병하는데는 성공했으나, 백제의 군대 파병 사건을 계기로 고구려와 백제의 사이는 냉랭해진다. 여기에 대방이라는 완충지대마저 사라져 고구려와 백제는 예성강-임진강 유역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까지 백제는 남쪽의 마한 잔당들을 토벌하는 동시에 한반도 중부 유역의 말갈족의 침입에 대비해야 했고, 고구려는 342년 전연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침략해오며 국난을 맞이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고구려-백제 접경 지역은 소강상태를 유지했지만, 355년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연과 조공 책봉 관계를 맺고 눈을 남쪽으로 돌리며 충돌이 가시화된다.

 

369년 고국원왕은 병사 2만을 이끌고 백제를 침공한다. 목적은 예성강 하구를 장악하고 백제의 관문인 한강 하구를 위협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백제의 태자 근구수는 군대를 이끌고 치양(현재의 황해도)으로 고구려군을 요격하기 위해 출전한다. 전투 결과 백제군의 승리했고, 무려 5000급에 이르는 포로를 사로잡았다. 이 전투를 계기로 대방 지역을 두고 알력 다툼을 벌이던 고구려와 백제의 힘의 균형이 백제로 기울었으며, 백제는 황해도 지방을 영유하게 되었다.

 

이에 고국원왕은 371년 재차 백제를 침공하지만, 패하 가에 매복하고 있던 백제군에게 또다시 패배했다. 패하는 예성강 아니면 임진강으로 추정된다. 임진강 북안에서 예성강에 이르는 옛 대방지역을 확보하는데 실패한 고구려는 역으로 37110월 백제 근초고왕의 침공을 당해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국난을 맞이한다. 이를 통해 백제는 멸악산맥 이남의 황해남도 지역을 확고하게 장악할 수 있었다.

 

고국원왕이 전사한 뒤에 왕위에 오른 소수림왕은 국난을 타개하고자 국가 통치 체제를 정비했고, 요동의 전진과 우호관계를 형성한 후 백제 공격에 나서 375년 수곡성(황해도 신계로 비정)을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후 백제가 황해도 남부~임진강 연안에 걸쳐 관방시설을 축조하면서 고구려는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되었고, 요동 지방에서 전진이 쇠퇴하고 후연이 새로이 등장에 고구려를 위협하면서 고구려의 시선은 요동지방을 향해야 했다. 이렇게 백제-고구려 전쟁은 광개토태왕이 등장하기 전까지 소강상태를 이룬다.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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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악산맥과 수곡성, 배천 전투 접전 예상 위치 

 

참고문헌

 

 

 

 

 

이서진의 '임진강 전쟁 역사' 연재


제2편- 광개토대왕의 6년 전쟁

제7회 6년전쟁의 배경

제8회 고구려의 392년 공세

제9회  관미성 탈환을 위한 백제의 반격과 고구려의 396년 공세


1편 - 임진강의 전략적 중요성 -

제1회 한강 하구의 가치와 임진강의 지형적 특성

제2회 임진강을 중심으로 한 교통로

제3회 파주의 요충 중에 요충지, 파주와 적성

제4회 임진강 유역 삼국의 관방시설

제5회 백제를 중심으로

제6회 고구려와 신라를 중심으로 

 

 

제3편 장수왕의 남진정책과 임진강

제10회 평양천도와 나제 동맹

제11회 한성로와 장수왕의 한성 공략 

제12회 고구려 퇴각과 임진강 방어선의 확립

 

 4편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13회 나제 동맹군의 한강유역 진출과 독산성 전투 

제14회 나제 동맹의 결렬과 관산성 전투

제15회 임진강 유역 신라의 관방시설과 고구려의 새로운 공세

제16회 낭비성 전투

제17회 낭비성 전투의 의의

제18회 고구려의 마지막 공세

제19회 662년 임진강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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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진 역사학과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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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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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juwiki님의 댓글

pajuwiki 작성일

왜 광개토대왕이 아니고 광개토태왕인가?

파주위키가 연재하고 있는 '임진강 전쟁 역사' 2편 '광개토태왕의 6년 전쟁'의 제목이 흔히 알고 있는 '대왕'이 아니고 '태왕'이다.

현재 통상적으로 불리는 광개토대왕은 공식적인 명칭이기는 하지만 당대의 공식적인 호칭은 태왕(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등)이다. 따라서 필자는 고구려의 당시 명칭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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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juwiki님의 댓글

pajuwiki 작성일

광개토태왕비의 자세한 이야기를 참고하세요
https://www.mk.co.kr/news/culture/7817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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