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의 군사유적지 - 장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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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72년 발간 지방지도 중 장산진과 임진진 부근
이 내용은 이윤희 파주지역문화연구소장이 '임진강 스토리 공모' 를 후원하기 위해 투고한 '고대국가시기 임진강유역 관방 유적 체계'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장산진은 임진진에서 서쪽 아래인 문산읍 장산리 일대로 임진강이 초평도 를 돌아 흐르는 임진강 남안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덕진산성의 상류지역 에 해당되며 우측으로 임진진과 병렬적인 위치에 있어 임진진의 방어를 지원 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755년 장산진이 설치되었을 때 건물 규모는 48간의 鎭舍와 그 주위에 100 步의 석성, 8개의 토성 墩臺가 있었으며 軍器로 大鼓 1, 징 1, 나팔 1, 호적 1쌍, 환도 154, 조총 159, 화약 70근, 연환 4,000개, 화약통 50개, 火繩 100 대 등이었다.
군량으로 원향 1,500석, 麻田 移轉米 170석 8두, 長湍 移轉米 275석 10두를 보유했으며 병력으로는 代將 1명, 左右哨官 2명, 知敎官 1명, 旗牌官 2명, 軍器監官 1명, 禁松設官 1명, 墩臺監官 8명, 書員 1명, 通引 2명, 庫直 1명, 及唱 1명, 旗手 4명, 禁山直 1명, 墩臺直 8명, 牙兵 40명 등이다.
『문화유적총람』에 보면 ‘고려말 몽고병이 침입하여 왔을때 임진강을 도하 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서 토성의 돈대를 축조하고 돈대내에서 활을 쏴 외적 을 무찔렀던 돈대가 8개소 있으며 돈대의 지름은 14m, 높이는 2.5m 이다.’라 고 하고 있다.
1942년 조선총독부가 실시한『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보면 ‘8개의 돈대가 있는데 돈대 주위에는 높이가 2간 정도의 토벽이 있고 각 돈대 마다 출입로가 있다.’고 하여 그 당시 돈대의 잔존 모습을 알 수 있다. 8개의 돈대는 모두 합쳐 약 800간에 대략 1km가 되는 구릉상에 거의 일렬로 배치하 였으며 돈대간의 거리는 약 150m 내외의 간격으로 3개 돈대는 타원형이고 5개 돈대는 원형이었다.
장산진은 도강하여 오는 적을 방어하는 독립적인 전초진지로서의 역할 보 다는 상류의 임진진과 상호 호응하면서 임진진을 방어하는 연계 방어진지로 서의 성격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甲午更張시 전국의 兵・水營이 革罷 될 때 임진진, 장산진 모두 廢 鎭된 것으로 보인다.
이윤희 - 임진강유역의 군사유적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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