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진 설치 과정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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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00년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김양기의 '임진서문'의 일부
임진나루에 본격적인 방어 시설이 설치된 것은 영조 때이다. 1755년 임진나루에 ‘임진진’이라는 군진을 설치하였다. 그 주둔지로 나루 안쪽 협곡을 가로지르는 성벽을 쌓았다. 그 성벽 출입문을 세웠는데 이를 진서문(鎭西門)이라 하고 성문 위에는 누각을 세워 임벽루(臨壁樓)라 불렀다.
왕조실록 영조 30년 갑술(1754년) 11월 18일 기록에 따르면 총융사 홍봉한(洪鳳漢)이 명을 받고 임진(臨津) 나루터 현황을 조사하여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임진부터 위로 3, 40리는 다 4, 5장(丈)의 적벽(赤壁)이고, 아래도 또한 사방이 막혀서 염려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마는, 내소정(來蘇亭) 근처에 얕은 여울이 있어 옛 장릉(長陵)으로 통하는 길에 막힌 데가 없으므로 이곳이 허술합니다.
내소정의 얕은 여울부터 장산(長山)까지 모두 7리가 되는 곳에 토성(土城)을 쌓아 막고, 인하여 방수 별장(防戍別將)을 두거나 파주(坡州)의 읍치(邑治)를 옮겨 설치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임진 좌우의 석벽(石壁) 사이에 홍예 석문(虹霓石門)을 설치하는 것도 국위(國威)를 견고하게 하는 방도가 될 수 있겠습니다.”
영조는 홍봉한의 보고를 받고 금위대장 구선행(具善行)에게 임진진 설치를 위해 현장 확인토록 했다.
"摠戎使洪鳳漢, 承命往審臨津形便, 至是還奏曰: “臨津以上三四十里, 皆四五丈赤壁, 以下亦四塞, 無可慮, 而來蘇亭近處有淺灘, 通舊長陵路無所遮隔, 此爲踈虞。 若自來蘇亭淺灘, 至長山合七里之地, 築土城以塞之, 仍置防戌別將, 或移設坡州邑治爲宜. 臨津左右石壁之間, 設虹霓石門, 亦可爲壯國威之道.” 上命禁將具善行, 更爲往審"
<출처 : CNB 이한성 옛길 답사기 2021.5.13, https://m.weekly.cnbnews.com/m/m_article.html?no=138751#_DY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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