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신산리 장터 폭발물 사고 38명 사상자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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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10.16일 오후 광탄고등공민학교 인근 장터의 대장간에서 분해 중인 포탄이 폭발하여 15명이 사망하고 23명이 중상을 입은 대형사고가 있었다.
당시에는 불발탄 포탄이나 미군 훈련 중에 버려진 탄피 등을 회수하여 고물로 팔기도 했다. 당시 탄피 껍데기는 1관에 40원 정도로 쌀 80키로 한가마가 3,400원 정도이므로 쌀 1키로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파주위키에서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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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일님의 댓글
주 일 작성일
내가 신산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장날 토요일 반공일에 친구들과 시장을 둘러보고 대장간에 멈췄는데 가끔 대장간 일하는 것을 신기하게 구경 했고 그날은 포탄 두발이 있어서 대장간서 포탄을 달구어 백금을 추출한다고 했다.
당시는 폭우가 쏟아지면 서래울 마을 산 계곡에서 625때 사용하다 매몰되어 방치된 포탄 (주로 81mm 박격포탄이 수백발씩 노출되어 지서에 신고하고 자유의 벗 책자를 얻고 도러 학용품을 받기도 했는데 그때 포탄은 155mm 였고 상태로 보면 미군이 포사격 때 사용하다 분실 또는 방치되어 민간이 취득한 것이 꽤 되던 시절이었다.
내 집이 있는 문산천에서 북녘 사격장으로 쏘는 포격훈련을 엄청나게 보던 시절이고 그런 때 잊고 간 것으로 보면 맞는다.
나와 같은 책상에서 공부하는 친구 지근훈 이 그날 폭발로 신체가 날아갔고 3km 거리의 집에 거의 도착하기 전 두발의 포탄이 터졌고 포가격으로 생각했는데 버스에서 내린 어른들이 신산리 시장서 폭발사고로 난리 났다는 얘기를 듣는데 서울에서 온 차량에서 호외를 뿌려 읽고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틀 후 월요일 등교 길에 대장간에 가보니 그 앞 장터에 하얀 종이로 싼 관이 열개 넘게 놓여 있었고 나의 짝 지근훈 이름도 있어서 슬퍼하며 학교로 갔고 그 다음날 친구 가족 위로하러 선생님과 친구들이 쌀, 돈, 모금해서 갔을 때 나는 짝을 잃은 슬픔에 가지 않았다.
폭발사고 20년 후 1985년 뉴욕으로 이민을 와서 사십년이 흘렀지만 그때 생각에 인터넷서 찾아보다가 목격자 내가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이리역 화약열차 폭발때 이리시에 있었고 역전으로 구조하러 간적도 있고 뉴욕시 쌍둥이 빌딩 폭파 때는 출근을 멈추고 맨하탄으로 달리다가 교통정체로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슬퍼한 증인이기도 하다.
내 이름은 (주 일) 신안 주씨 한 일 외자 이름 주 일 이다.

주 일님의 댓글
주 일 작성일
내가 신산국민학교 6학년 이었고 장날 토요일 반공일에 친구들과 시장을 둘러보고 대장간에 멈추어 대장간 일하는 것을 신기하게 구경 했고 그날은 포탄 두발이 있어서 대장간서 포탄을 달구어 백금을 추출한다고 했는뎊친구들과 위험하다는 이야기 하며 집으로 떠났다.
항상 두명의 대장간 아저씨가 일했는데 그들이 코크스 불에 포탄을 넣고 풀무질 했다고 들었다.
당시는 폭우가 쏟아지면 서래울 마을 산 계곡에서 625때 사용하다 매몰되어 방치된 포탄 (주로 81mm 박격포탄)이 수백발씩 노출되어 지서에 신고하고 자유의 벗 책자를 얻고 어떤 때는 학용품을 받기도 했는데 그때 포탄은 155mm 였고 상태로 보면 미군이 포사격 때 사용하다 분실 또는 방치되어 민간이 취득한 것이 꽤 되던 시절이었다.
내 집이 있는 문산천에서 북녘 사격장으로 쏘는 포격훈련을 엄청나게 보던 시절이고 그런 때 미군이 잃어버리고 간 것으로 보면 맞는다.
나와 같은 책상에서 공부하는 친구 지근훈 이 그날 폭발로 신체가 날아갔고 3km 거리의 집에 거의 도착하기 전 두발의 포탄이 터졌고 포사격으로 생각했는데 버스에서 내린 어른들이 신산리 시장서 폭발사고로 난리 났다는 얘기를 듣는데 두시간 되었을 즈음 서울에서 온 차량에서 호외를 뿌려 읽고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틀 후 월요일 등교 길에 대장간 앞에 가보니 그 앞 장터 입구에 하얀 종이로 싼 관이 열개 넘게 놓여 있었고 나의 짝 지근훈 이름도 있어서 슬퍼하며 학교로 갔고 그 다음날 친구 가족 위로하러 선생님과 친구들이 쌀, 돈, 모금해서 갔을 때 나는 짝을 잃은 슬픔에 가지 않았다.
폭발사고 20년 후 1985년 뉴욕으로 이민을 와서 사십년이 흘렀지만 그때 생각에 인터넷서 찾아보다가 목격자 내가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나는 이리역 화약열차 폭발때 이리시 마동에 있었고 역전으로 구조하러 갔었고 뉴욕시 쌍둥이 빌딩 폭파 때는 나의 자영업 회사 출근을 멈추고 맨하탄으로 구조하러 달리다가 교통정체로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슬퍼한 산증인이기도 하다.
내 이름은 (주 일) 신안 주씨 한 일 외자 이름 주 일 이며 신산국민학교 36회, 방축 1리 (검전리) 서울식당 둘째 아들이다.

pajuwiki님의 댓글의 댓글
pajuwiki 작성일
지역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신산초등학교 41회 졸업생 이기상입니다. 내년 2026년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추진하기 위해 100주년 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의 드릴 내용이 있으니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10-9652-9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