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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균 생애와 민통선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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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juwiki
댓글 0건 조회 2,311회 작성일 23-12-2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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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전쟁 1년전에 성낙균이 구입한 초리의 농지


민통선 접경지역 변화 과정에 대하여 파주향토문화연구소 성지오 부소장이 파주연구에 기고한 '접경지역 남방한계선 변화과정 소고-장단군 진동면 초리 출생자 성낙균의 삶을 중심으로'의 연구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저자의 부친인 성낙균이 살아 온 이야기를 통해 민통선 북쪽 마을의 사회 공간적 분포 및 변화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했다. 


다음 내용은 머릿말 내용으로 전체 연구 보고서는 링크로 첨부됐다.


==머릿말==

본 연구는 한국전쟁이 휴전되면서 생겨난 한계선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 한계선이 그어진 자리에서 태어나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하겠다. 한 개인의 삶이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변하였는지, 한국전쟁의 상흔을 민통선이 달라지면서 변하여 가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왜냐하면 최근 <경기일보>에 보도된 고인돌 군이 있던 자리를 그분의 증언으로 들을 수 있었고, 그분의 한 생이 자꾸 사라져가는 시점에서 이렇게라도 흔적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소위 민통선 북쪽 마을의 사회 공간적 분포 및 변화의 문제 속에는 그곳에서 겪었던 수많은 아픔이 있다. 


여기서 예로 든 사람은 나의 아버지이다. 내가 전쟁이 끝나고 몇 년 후 태어났으니 자라면서 수없이 들었던 피란 나오던 이야기, 우리 가족은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더 절절히 와 닿는다. 자랄 때 임진강 얘기만 들어도 그 강은 건너가야 할 곳, 내 부모님의 터전이 있는 곳으로 그리웠고 궁금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장단군 진동면 초리, 민간인들은 얼씬도 하지 못하다가 최초의 민통선이 정해지면서 농사를 지으러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러다가 민통선이 북상하게 되어 집터 자리도 들어가게 되는 그나마 행운이랄까 북한과의 문제에서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를 겪은 경우이다.

 

우리나라에서 군사시설보호법 제정 이후 최초로 민간인통제선이 그려진 것은 휴전되고 다음 해인 1954년이다. 그러다가 1976년 변화가(의) 7.4 남북공동성명의 결과로 있게 되고, 1983년 최초의 민통선이 북상하고 1993년, 1997년, 2008등 4차에 걸쳐 북상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파주의 탄현 등 임진강 하류 접경지역도 내가 고3 때인 76년까지도 민간인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지역이었다. 그 마을 중 민간인 통제구역 마을에서 해제된 마을은 문산읍 내포리와 탄현면의 금승리 낙하리 문지리 등의 10개 마을이다. 그러던 곳에 카페들이 생겨 북쪽을 바라보며 즐기게 되다니 가히 상상도 할 수없는 변화를 보고 있다.


2022년 현재의 파주의 민통선 안의 마을은 임진강 건너 장단군의 진동면, 장단면, 진서면, 군내면의 마을들 24개 리가 있다. 그중 현재 사람들이 사는 민통선 안의 마을은 대성동, 통일촌, 해마루촌의 3개 마을만이 사람들이 살고 있고 나머지 지역은 농사만 지으러 들어갈 수 있다. 민통선 북상은 민통선 북쪽 마을의 고유 특성을 사라지게도 할 수 있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과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관련내용 유튜브 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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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오 파주향토문연구소 부소장


*보고서를 볼려면 연결된 링크를 누르고 다운로드후 보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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