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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명 유래== | | ==지명 유래== |
− | 공릉천은 조선시대 예종의 원비의 능인 '공릉'에서 유래되었고 해동지도(1750년대)와 광여도(19세기 전반)에도 공릉천(恭陵川)으로 남아 있다. | + | 공릉천은 조선시대 예종 원비의 능인 '공릉'에서 유래되었고 해동지도(1750년대)와 광여도(19세기 전반)에 공릉천(恭陵川)으로 표기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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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릉천은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고양시 심천, 조리읍 봉일천, 금촌동 금성진, 교하동 방천, 탄현 오금천과 대자천 합류지점 사이는 신원천이라고 불렸다. | + | 공릉천은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고양시는 심천, 조리읍 봉일천, 금촌동 금성진, 교하동 방천, 탄현 오금천과 대자천 합류지점 사이는 신원천이라고 불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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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는 공릉천(恭陵川)이라고 불리던 이름을 조선총독부가 발행하는 1920년 고양·경성 측량도에 곡릉천(曲陵川)이라고 바꾸어 표기했다. 이 당시는 일제가 식민지 구축이 한창이던 시기로 이후부터 90여년간 곡릉천이라는 지명으로 쓰이게 됐다. | + | 일제는 공릉천(恭陵川)이라고 불리던 이름을 조선총독부가 발행하는 1920년 고양·경성 측량도에 곡릉천(曲陵川)이라고 바꾸어 표기했다. 이 당시는 일제가 식민지 구축이 한창이던 시기로 이후부터 90여년간 곡릉천이라고 불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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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시는 당시 국토교통부에 ‘곡릉천(曲陵川)’의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다면서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을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심의를 거쳐 2009.11.12일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 고시했다. | + | 파주시는 ‘곡릉천(曲陵川)’의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다면서 당시 국토교통부에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을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심의를 거쳐 2009.11.12일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 고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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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릉천 주변 지역은 하상보다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를 겪었다. 장마 피해를 입던 지역 주민들은 홍수가 나지 않게 해달라는 뜻으로 해[日]와 내[川]를 받들어[奉]모신다 하여 봉일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 | 공릉천 주변 지역은 하상보다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를 겪었다. 장마 피해를 입던 지역 주민들은 홍수가 나지 않게 해달라는 뜻으로 해[日]와 내[川]를 받들어[奉]모신다는 뜻으로 봉일천이라고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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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천 역사 == | | ==하천 역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