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협정 당일 판문점에서 양국 수석대표단이 가서명하고 유엔군측 마크 W. 클라크 유엔사 사령관은 '캠프 라이스' 극장에서 서명했다.
휴전협정 당일 판문점에서 양국 수석대표단이 가서명하고 유엔군측 마크 W. 클라크 유엔사 사령관은 '캠프 라이스' 극장에서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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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오언부대 소속부대로 제69야전 포병 대대, 제 1 해병 사단 (제 7 보병 사단 제 49 야전 포병 대대가 됨), 13 야전 포병, 24 보병 사단, 제 19 야전 포병 연대 제 2 대대, 제 82 야전 포병 연대 제 5 대대와 제1대대, 제4포병 연대 E 중대, 제 2 공병대대, 4-7 기병 연대 등 9개 부대가 주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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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캠프를 폐쇄하면서 대부분 동두천의 Camp Hovey로 이전했고 4-7기병 연대가 캠프 해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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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측은 공사 사업비는 테러방지용 공법을 이용한 교량으로 계산했다고 답변 했다고 한다. 교량 재가설 추진이 지연되다가 2010년 경에 기존 교량보다 1/4정도 확장된 현재의 트러스트 아치교량로 교체됐다.
미군측은 공사 사업비는 테러방지용 공법을 이용한 교량으로 계산했다고 답변 했다고 한다. 교량 재가설 추진이 지연되다가 2010년 경에 기존 교량보다 1/4정도 확장된 현재의 트러스트 아치교량로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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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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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는 제 69 야전 포병 대대, 제 1 해병 사단 (제 7 보병 사단 제 49 야전 포병 대대가 됨), 13 야전 포병, 24 보병 사단, 제 19 야전 포병 연대 제 2 대대, 제 82 야전 포병 연대 제 5 대대와 제1대대, 제4포병 연대 E 중대, 제 2 공병대대, 4-7 기병 연대 등 9개 부대가 주둔했었다. 2004년 캠프를 폐쇄하면서 대부분 동두천의 Camp Hovey로 이전했고 4-7기병 연대가 캠프 해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