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편집다음 편집 → 용미리 시립묘지 (원본 보기) 2022년 6월 28일 (화) 05:57 판 4 바이트 제거됨 , 2022년 6월 28일 (화) 05:57 →묘역 만장과 납골당 운영26번째 줄: 26번째 줄: 서울시는 매장 방식의 문화를 화장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당시 고건 서울시장은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1998년 말부터 서울 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을 찾는 시민들이 급격히 증가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서울시는 매장 방식의 문화를 화장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당시 고건 서울시장은 '화장 유언 남기기 운동'을 시작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1998년 말부터 서울 시립승화원(벽제화장장)을 찾는 시민들이 급격히 증가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따라 서울시는 용미리 1묘지 구역에 묘지형태의 본묘형 7,650위, 벽식형 5,348위, 왕릉·벽식 통합형 26,934위 전체36,932위를 신설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서울시는 용미리 1묘지 구역에 묘지형태의 본묘형 7,650위, 벽식형 5,348위, 왕릉·벽식 통합형 26,934위 전체36,932위를 신설했다. 2000.4.9일에는 용미리 2묘지에 36,945위를 모실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인 '제2추모의집'을 준공했다. 이 납골당은 지하2층, 지상3층 연건평 3천여제곱미터 규모로 유리납골함과 부부형 납골함도 설치 했다. 2000.4.9일에는 용미리 2묘지에 36,945위를 모실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인 '제2추모의집'을 준공했다. 이 납골당은 지하2층, 지상3층 연건평 3천여제곱미터 규모로 유리납골함과 부부형 납골함도 설치 했다. Pajuwiki사무관, 인터페이스 관리자, paki, 관리자편집 6,728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