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민들은 심학산이 왕실과 인연이 깊은 산 또 는 선학(仙鶴)이 찾아드는 길지(吉地) 정도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숙종 때 궁궐에서 도망친 학 두 마리를 발견한 산이라 하여 심학산이 되었다는 이야기(파주문화원 1997, 347; 파주문화원 2009, 46)는 조선시대의 문헌에 발견되지 않아, 심학산으로 명칭이 변경된 뒤에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 | 일반인들은 심학산이 왕실과 인연이 깊은 산 또 는 선학(仙鶴)이 찾아드는 길지(吉地) 정도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숙종 때 궁궐에서 도망친 학 두 마리를 발견한 산이라 하여 심학산이 되었다는 이야기(파주문화원 1997, 347; 파주문화원 2009, 46)는 조선시대의 문헌에 발견되지 않아, 심학산으로 명칭이 변경된 뒤에 누군가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