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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 시장 또는 전통시장으로 불리며 물품의 교환 또는 판매를 위해 형성된 시장이다.
 
재래 시장 또는 전통시장으로 불리며 물품의 교환 또는 판매를 위해 형성된 시장이다.
 
[[File:pk시장전경.JPG|400px|섬네일|자료사진]]
 
[[File:pk시장전경.JPG|400px|섬네일|자료사진]]
==시장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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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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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형성===
 
재래시장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으며, 고려시대에는 '시전'이라는 관영상업시설이 등장했고. 조선시대에는 5일장 형태의 정기시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재래시장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으며, 고려시대에는 '시전'이라는 관영상업시설이 등장했고. 조선시대에는 5일장 형태의 정기시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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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 시기에는봉일천장, 문산포장, 눌노장, 원기장, 신화리장, 삼군장, 부내장, 사천장, 사미천장, 구화장, 고랑포장, 도정장, 두일장, 오목천장, 임암장 등 총15개 시장이 개장했다.
 
『임원경제지』 시기에는봉일천장, 문산포장, 눌노장, 원기장, 신화리장, 삼군장, 부내장, 사천장, 사미천장, 구화장, 고랑포장, 도정장, 두일장, 오목천장, 임암장 등 총15개 시장이 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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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와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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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와 분포===
 
파주의 시장는 입지형태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그 첫째는 수운을 활용한 입지이며, 둘째는 육상 교통을 이용한 시장, 셋째는 관청의 영향력이 미치는 읍치, 농촌 부근에 입지한 형태이다.
 
파주의 시장는 입지형태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는데 그 첫째는 수운을 활용한 입지이며, 둘째는 육상 교통을 이용한 시장, 셋째는 관청의 영향력이 미치는 읍치, 농촌 부근에 입지한 형태이다.
    
파주는 대량 운송수단인 선운(船運)이 가능했던 지역이었으며 경기만에 인접해 있어 조소 차이에 의한 선박 출입이 용이하여 많은 포구가 형성되었다. 18세기 이후 선박을 통한 상품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입거가 좋은 곳을 중심으로 포구는 상업이용을 취하는 물류의 거점으로 변화했다.
 
파주는 대량 운송수단인 선운(船運)이 가능했던 지역이었으며 경기만에 인접해 있어 조소 차이에 의한 선박 출입이 용이하여 많은 포구가 형성되었다. 18세기 이후 선박을 통한 상품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입거가 좋은 곳을 중심으로 포구는 상업이용을 취하는 물류의 거점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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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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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물품===
 
파주 지역 시장의 거래 물품은 『임원경제지』를 통해 알 수 있다. 파주의 봉일천장에서는 미곡, 면포, 마포, 어염, 소(牛), 용기, 사기, 유기(범루고리), 비단 등이 거래됐다.
 
파주 지역 시장의 거래 물품은 『임원경제지』를 통해 알 수 있다. 파주의 봉일천장에서는 미곡, 면포, 마포, 어염, 소(牛), 용기, 사기, 유기(범루고리), 비단 등이 거래됐다.
    
교하의 신화리장에서는 미곡, 면포, 과일, 어염, 연초 등이 거래되었다. 또한 장단의 부내장에서는 미곡, 면포, 소(牛), 용기 등이 거래되었고, 적성의 두일장에서는 미곡, 면포, 마포, 과일(배, 밤, 감 등), 어염, 소, 연초 등이 유통되었다.
 
교하의 신화리장에서는 미곡, 면포, 과일, 어염, 연초 등이 거래되었다. 또한 장단의 부내장에서는 미곡, 면포, 소(牛), 용기 등이 거래되었고, 적성의 두일장에서는 미곡, 면포, 마포, 과일(배, 밤, 감 등), 어염, 소, 연초 등이 유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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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시장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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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시장 활동===
 
개항 이후에도 파주 지역에서는 활발한 시장 활동이 이어졌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파주 지역 시장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로는 1888년 일본에 의해 간행된 『조선지략(朝鮮地略)』과 19세기 말 편찬된 각 군현의 『읍지』, 『동국문헌비고』를 개정한 1908년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이 있다.  
 
개항 이후에도 파주 지역에서는 활발한 시장 활동이 이어졌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파주 지역 시장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로는 1888년 일본에 의해 간행된 『조선지략(朝鮮地略)』과 19세기 말 편찬된 각 군현의 『읍지』, 『동국문헌비고』를 개정한 1908년의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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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는 1906년 서울과 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도가 부설되었고, 이로 인해 서울 및 인근 지역과 더욱 활발한 물류이동이 이루어졌다.
 
파주에는 1906년 서울과 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도가 부설되었고, 이로 인해 서울 및 인근 지역과 더욱 활발한 물류이동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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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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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특징===
 
파주는 한강, 임진강과 같은 대형 하천과 의주로를 접하고 있는 지리적 입지, 그리고 도성의 위수 지역이라는 환경적인 요소가 합쳐져 상업이 발달했고 이는 시장의 개설로 이어졌다. 또한 파주는 서해안과 관서 지역의 산물이 서로 운반되는 길목이었고, 서전의 금난전권이 적용되는 범위에서 벗어났다. 서울과 거리가 가까워 도성의 상공도구와 연계하며 상업이 확대될 수 있었다.
 
파주는 한강, 임진강과 같은 대형 하천과 의주로를 접하고 있는 지리적 입지, 그리고 도성의 위수 지역이라는 환경적인 요소가 합쳐져 상업이 발달했고 이는 시장의 개설로 이어졌다. 또한 파주는 서해안과 관서 지역의 산물이 서로 운반되는 길목이었고, 서전의 금난전권이 적용되는 범위에서 벗어났다. 서울과 거리가 가까워 도성의 상공도구와 연계하며 상업이 확대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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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과 경의선 철도를 이용해 개항 이후에도 파주 지역의 시장에서는 여전히 상업이 성행했다. 따라서 파주 지역의 시장은 안성장 등과 더불어 도성 및 경기 지역의 물류 유통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수운과 경의선 철도를 이용해 개항 이후에도 파주 지역의 시장에서는 여전히 상업이 성행했다. 따라서 파주 지역의 시장은 안성장 등과 더불어 도성 및 경기 지역의 물류 유통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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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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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촌통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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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산자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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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탄경매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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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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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일천전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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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관련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