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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원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는 '焚修院분수원'이라고 불렸다. 이 이름의 '분수'는 향을 피우고 도를 닦는다는 뜻으로, 당시 이곳이 사찰이었음을 말해준다. 스님들이 머물며 수행하고, 의주로를 오가는 통행객에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분수원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는 '焚修院분수원'이라고 불렸다. 이 이름의 '분수'는 향을 피우고 도를 닦는다는 뜻으로, 당시 이곳이 사찰이었음을 말해준다. 스님들이 머물며 수행하고, 의주로를 오가는 통행객에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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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인 1656년, 『동국여지지』에서는  '分水院분수원'으로 표기됐다.. 이전의 '焚修院분수원'이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되었지만, 새로운 명칭이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보다는 유교국가이 조선이  불교적 색채를 지우는 과정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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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인 1656년, 『동국여지지』에서는  '分水院분수원'으로 표기됐다.. 이전의 '焚修院분수원'이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되었지만, 새로운 명칭이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명칭 변경보다는 유교국가인 조선이  불교적 색채를 지우는 과정으로 추정된다.
    
이후 '汾水院분수원'이라는 표기도 나타났는데, 이는 분수원과 같은 의미로 물의 흐름을 형상화한 한자였다. 焚修院분수원에서 分水院분수원, '汾水院분수원으로 이어지는 명칭 변화는  600년 역사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후 '汾水院분수원'이라는 표기도 나타났는데, 이는 분수원과 같은 의미로 물의 흐름을 형상화한 한자였다. 焚修院분수원에서 分水院분수원, '汾水院분수원으로 이어지는 명칭 변화는  600년 역사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