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paki.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월롱산 배수지 부근에 있는 전통사찰이다. [[File:pl용상상2013.jpg|400px|섬네일|2013년 전경, 파주위키]] ==개요== 용상사(龍床寺)는 월롱산 남쪽 사면 중턱에 위치한다. 성종 12년(993), 현종1년(1010)에 이어 현종 9년 (1018)에 소배압이 거느린 40만의 거란군이 개성까지 쳐들어오게 되자 현종은 민간인 차림으로 이곳 월롱산까지 피신하게 되었다. 다행히 강감찬이 귀주(龜州)에서 승리하면서 나라 안이 평정되자 현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절을 짓게 하고는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龍床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덕은화주(德隱化主)가 세종 27년(1445)에 중건하였으며 이때 소불석상(小佛石像)을 인근 벽장굴에 조성해 봉안하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도량이 되었는데 왜군의 시체가 근처 골짜기에 가득하여 한때는 “무덤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나,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절 이름이 보이고 있고, 177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 보면 ‘절이 지금은 없어졌다’라는 말이있어 임진왜란 이후 어느 때인가 폐사된 것으로 본다. 근대에는 1926년에 정염스님이 폐허가 된 절터에 사찰을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용상사는 옛 터에서 약간 아래쪽에 터를 닦아 해방 전에 중건되었다. ==용상사 화재== 2016년 2월 전열기기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용상사 대웅보전이 전소됐다. ==주요 문화재== ===용상사 석불좌상=== [[File:pk용상사좌북석상.jpg|200px|섬네일|좌불석상]] 파주 월롱산 남쪽 사면 중턱에 위치한 용상사(龍床寺) 대웅전에 봉안되었던 불상이다. 용상사는 고려 시대 현종과 관련한 일화가 전해오는 사찰로 조선 초 세종 때 중창된 것으로 전한다. 불상은 2016년 2월 용상사 대웅보전 화재로 훼손되어 가슴에서 무릎까지만 남았있다. 남은 부분도 표면은 거의 떨어져 나갔으므로 현재 보존처리하여 보관중이다. 원래 불상의 크기는 높이 61cm, 무릎너비 50cm로, 불상 하부 바닥면에는 ‘正統十年(정통십년)’이라고 새겨져 있다. 정통 10년은 1445년이므로, 용상사 중창 시에 제작하여 봉안되었던 불상으로 추정된다. 사진으로 전하는 불상의 모습은 신체에 비해 큰 장방형 얼굴에, 나발(螺髮; 소라처럼 말린 머리카락)의 머리에는 높은 육계(肉髻;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와 이마 위 머리에는 원형의 작은 중앙계주(髻珠; 머리를 장식한 보석)가 표현되었다. 가늘게 뜬 눈은 수평으로 가지런하며 삼각형의 코가 긴 편이다.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졌으며, 귓불이 두툼한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왼쪽어깨에만 걸쳐진 법의는 어깨위에서 한 단 뒤집어진 표현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에 얹어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얹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 모습을 하여 석가모니 붓다의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지 않고, 경직된 표정에 간략하게 묘사된 옷주름 표현 등이 특징이다. 조선 전기에는 석조불상의 예가 많지 않아 이 시기 불상연구에 귀한 자료이나 화재로 인한 손상으로 현재는 일부 자료적인 가치를 잃은 셈이다.<ref>국가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ccbaCpno=2113102800000</ref> ==관련 정보== ===링크 모음=== '''가볼만한곳''' <br> ---- '''더보기''' <br> ---- <categorytree mode="pages" >유물유적</categorytree > <br> [[분류:유물유적]] [[분류:월롱]] {{노출틀|용상사 |월롱, 현종, 월롱산, 덕은리, 덕은화주,무덤골 |용상사}}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노출틀 (원본 보기) 용상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