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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국여지승람 제11권 경기조 교하현편에 일미도는 교하현 북쪽 10리에 위치하고 물이 불으면 잠긴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동국여지승람 제11권 경기조 교하현편에 일미도는 교하현 북쪽 10리에 위치하고 물이 불으면 잠긴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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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미도의 일부는 탄현면 대동리 433-1로 토지대장에 등재되어 있고 면적은 2.92㎢로 전체 면적의 46%가 된다.아마 임진강 한 복판으로 휴전선이 나누어져 남한의 토지만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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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미도의 일부는 탄현면 대동리 433-1 번지로 토지대장에 등재되어 있다. 토지대장 면적은 2.92㎢로 전체 면적의 46%가 된다.아마 임진강 한 복판으로 휴전선이 나누어져 남한의 토지만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형성==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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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에 생성되는 하중도는 유량과 유속에 따라 쉽게 없어지거나 생겨난다. 대부분 유수가 구불구불 흐르다가 속도가 느려지거나 유로가 바뀌면서 퇴적물이 하천에 쌓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퇴적물의 규모가 확장되어 하천 한가운데 섬이 형성된다.
 
하천에 생성되는 하중도는 유량과 유속에 따라 쉽게 없어지거나 생겨난다. 대부분 유수가 구불구불 흐르다가 속도가 느려지거나 유로가 바뀌면서 퇴적물이 하천에 쌓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퇴적물의 규모가 확장되어 하천 한가운데 섬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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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질자원 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한반도의 서해안은 1500년을 전후에 해수면이 낮아져 대부분 염전이 바다쪽으로 800m 지점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후 1530년대와 1830년대 사이에는 해수면이 0.6m 정도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ref>나무위키, https://namu.wiki/w/해수면%20상승</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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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질자원 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한반도의 서해안은 1500년을 전후에 해수면이 낮아져 염전이 대부분 바다쪽으로 800 여m 지점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후 1530년대와 1830년대 사이에는 해수면이 0.6m 정도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ref>나무위키, https://namu.wiki/w/해수면%20상승</ref>
    
일미도는 해수면이 낮아진 1500년부터 생성되다가 1700년대 최대 규모의 넓이로 섬이 형성되고 해수면이 점차 상승하면서 1800년대에 수면아래로 잠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일미도는 해수면이 낮아진 1500년부터 생성되다가 1700년대 최대 규모의 넓이로 섬이 형성되고 해수면이 점차 상승하면서 1800년대에 수면아래로 잠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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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명칭==
1700년대 제작된 지도나 문헌에 나타나는 일미도는 일관되게 '일미도'로 표기되어 있지만 1724년에 제작된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는  '해암 蟹岩)으로 되어 있다. 해암으로 표기된 것은 임진강 건너 북한의 풍덕에 있던 해암이라는 지명을 오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ref> 규장각 원문검색서비스 고지도편  https://kyudb.snu.ac.kr/book/text.do?mid=GZD&&book_cate=GZD01&book_cd=GR33535_00&focus=d1sd13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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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제작된 지도나 문헌에는 일관되게 '일미도'로 표기되어 있지만 1724년에 제작된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는  '해암 蟹岩)으로 되어 있다. 해암으로 표기된 것은 임진강 건너 북한의 풍덕에 있던 해암이라는 지명을 오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ref> 규장각 원문검색서비스 고지도편  https://kyudb.snu.ac.kr/book/text.do?mid=GZD&&book_cate=GZD01&book_cd=GR33535_00&focus=d1sd13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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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一眉)는 한자로 하나 일(一)과 눈썹 미(眉)자를 쓰고 있다. 이 섬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하류 구역으로 강폭이 가장 넓은 곳은 3km 정도이다. 섬에 나무가 없어 강변에서 섬을 보면 눈섭 모양의 수평선으로 보여져 일미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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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미(一眉)는 한자로 하나 일(一)과 눈썹 미(眉)자를 쓰고 있다. 이 섬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하류 구역으로 강폭이 가장 넓은 곳은 3km 정도이다. 섬에 나무가 없어 강변에서 일미도를 보면 눈섭 모양의 수평선으로 보여져 이름이 만들어 것으로 추정된다.
    
==이용==
 
==이용==
1791년(정조14년)10월3일 일성록 기록에 의하면 교하에 거주하는 이락(李洛)이 일미도의 농사를 본인 소유로 해달라는 상언(상소와는 달리 개인적이 용무를 국왕에게 제출하는 건의서)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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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정조14년)10월3일 일성록 기록에 의하면 교하에 거주하는 이락(李洛)이 일미도의 농사를 본인 소유로 해달라는 상언을 제기했다,
    
이락은 상언에서 일미도 남쪽에 사토가 쌓여 육지가 되어 관청에 허가를 맡아 개간했다. 그러나 내수사 관리인들이 기존 왕실토지와 연결되어 강제로 왕실 소유로 했다고 반환을 요청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ref>규장각 일성록</ref>
 
이락은 상언에서 일미도 남쪽에 사토가 쌓여 육지가 되어 관청에 허가를 맡아 개간했다. 그러나 내수사 관리인들이 기존 왕실토지와 연결되어 강제로 왕실 소유로 했다고 반환을 요청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ref>규장각 일성록</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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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록==
 
==관련 기록==
 
===월암 구경===
 
===월암 구경===
이건명의 한포채집 1권의 시문으로 임진강을 여행하면서 일미도와 오두산의 경관을 노래했다. 제목은 "주관월암(舟觀月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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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명의 한포채집(1758년 발행) 1권의 시문으로 임진강을 여행하면서 일미도와 오두산의 경관을 노래했다. 제목은 "주관월암(舟觀月巖)"이다.
    
시편에는 일미도를  '한 줄기 눈썹처럼 작은 섬 비껴 있고' 라 표현하고  '오도성 서쪽은 이미 어두워졌네' 라면서 오두산성을 노래했다.
 
시편에는 일미도를  '한 줄기 눈썹처럼 작은 섬 비껴 있고' 라 표현하고  '오도성 서쪽은 이미 어두워졌네' 라면서 오두산성을 노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