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뀜

428 바이트 추가됨 ,  2025년 3월 19일 (수)
편집 요약 없음
12번째 줄: 12번째 줄:  
일제는 공릉천(恭陵川)이라고 불리던 이름을 1920년 고양·경성 측량도(조선총독부 발행)에 곡릉천(曲陵川)이라고 바꾸어 표기했다. 이 당시는 일제가 식민지 구축이 한창이던 시기로 이후부터 90여 년간 곡릉천이라고 불렸다.
 
일제는 공릉천(恭陵川)이라고 불리던 이름을 1920년 고양·경성 측량도(조선총독부 발행)에 곡릉천(曲陵川)이라고 바꾸어 표기했다. 이 당시는 일제가 식민지 구축이 한창이던 시기로 이후부터 90여 년간 곡릉천이라고 불렸다.
   −
파주시는 ‘곡릉천(曲陵川)’의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다면서 당시 국토교통부에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을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심의를 통해 2009.11.12일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 고시했다.
+
파주시는 ‘곡릉천(曲陵川)’의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다면서 당시 국토행부에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을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심의를 통해 2009.1월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 고시했다.
    
공릉천 주변 지역은 하상보다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를 겪었다. 장마 피해를 입던 봉일천 지역 주민들은 홍수가 나지 않게 "해[日]와 내[川]를 받들어[奉]모신다"는 뜻으로 봉일천이라고 불렀다.
 
공릉천 주변 지역은 하상보다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를 겪었다. 장마 피해를 입던 봉일천 지역 주민들은 홍수가 나지 않게 "해[日]와 내[川]를 받들어[奉]모신다"는 뜻으로 봉일천이라고 불렀다.
    
==하천 역사 ==
 
==하천 역사 ==
파주의 공릉천은 지금의 금촌, 교하, 운정, 탄현 지역을 통과 하고 삼국시대부터 교하군  관할 구역이었다. 이 구역을 담당하는 관아는 시대마다 위치가 다르지만 탄현면 갈현리에 있던 관아가 1733년 지금의 금촌으로 이전했다.  
+
파주의 공릉천은 지금의 금촌, 교하, 운정, 탄현 지역을 통과 하고 삼국시대부터 교하군  관할 구역이었다. 이 구역을 담당하는 관아는 시대마다 위치가 다르지만 탄현면 갈현리에 있던 관아가 1733년 지금의 금촌으로 이전됐다.  
   −
교하지역과 인접한 금릉동 공릉천에는 나루터가 있었다. 대동여지도에 금성진(金城津)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다른 고지도는 금성포, 금척진, 금척포진이라고도 불렀다.
+
교하지역과 인접한 금릉동 공릉천에는 나루터가 있었다. 대동여지도에는 금성진(金城津)으로 표기됐고 다른 고지도는 금성포, 금척진, 금척포진이라고도 불렀다.
    
금성진 나루터는 상선이 드나 들던 곳으로 큰 창고가 있어 대창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금촌택지 부근의 교하향교만 금릉동에 남아 있다. 이 곳 나루터가 매년 홍수로 하상이 높아지자 상선배는 지금의 금릉역 부근의 쇠곳나루((金串津)으로 이전하여 정박하게 됐다.  
 
금성진 나루터는 상선이 드나 들던 곳으로 큰 창고가 있어 대창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금촌택지 부근의 교하향교만 금릉동에 남아 있다. 이 곳 나루터가 매년 홍수로 하상이 높아지자 상선배는 지금의 금릉역 부근의 쇠곳나루((金串津)으로 이전하여 정박하게 됐다.  
25번째 줄: 25번째 줄:  
쇠곳나루는 지금의 금촌1택지 북단의 은행나무 있는 곳으로 교하와 금촌을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고 상선배가 정박하자 지역일대에 큰 시장이 형성되었다.
 
쇠곳나루는 지금의 금촌1택지 북단의 은행나무 있는 곳으로 교하와 금촌을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고 상선배가 정박하자 지역일대에 큰 시장이 형성되었다.
   −
조선시대부터 모를 길러 논으로 이앙하는 재배법이 확대되면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시설은 수세를 징수하고 농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되었다.
+
조선시대부터 모를 길러 논으로 이앙하는 재배법이 확대되면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시설은 수세를 징수하고 농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공릉천 하류었던 조리, 금촌, 교하, 탄현은 평야지대로 영농시기에는 용수공급을 위해 저수지나 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중 공릉천은 조수의 영향을 받는 감초하천 구역이라 하천 여러 곳에 보가 설치됐다.
 
공릉천 하류었던 조리, 금촌, 교하, 탄현은 평야지대로 영농시기에는 용수공급을 위해 저수지나 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중 공릉천은 조수의 영향을 받는 감초하천 구역이라 하천 여러 곳에 보가 설치됐다.
50번째 줄: 50번째 줄:  
===공릉천 금촌꽃밭===
 
===공릉천 금촌꽃밭===
 
[[File:410418공릉튜율립2a.jpg|300px|섬네일|공릉천 금촌 꽃밭]]2000년대 중반 [[금촌2지구 택지개발|금촌 택지개발 사업]]과  경의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공릉천 금촌구간의 이용자 급증했다. 2005년부터는 공릉천에 보리를 심어 수확기 '공릉천 보리 수확 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2021년 3천여평 둔치에 튜율립을 14만 송이를 심는 등 매년 꽃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공릉천 금촌꽃밭|자세히 보기]]
 
[[File:410418공릉튜율립2a.jpg|300px|섬네일|공릉천 금촌 꽃밭]]2000년대 중반 [[금촌2지구 택지개발|금촌 택지개발 사업]]과  경의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공릉천 금촌구간의 이용자 급증했다. 2005년부터는 공릉천에 보리를 심어 수확기 '공릉천 보리 수확 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2021년 3천여평 둔치에 튜율립을 14만 송이를 심는 등 매년 꽃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공릉천 금촌꽃밭|자세히 보기]]
 +
 +
===공릉천 자전거길===
 +
파주삼릉에서 시작하여 송촌교까지 이르는 공릉천 [[자전거도로|자전거길]]은 총 16km로 이루어져 있다. 사계절 동안 경치가 빼어난 코스로 철새와 갈대, 연무 등을 볼수 있다.--paki 2025년 3월 19일 (수) 08:43 (KST)
 +
*코 스 : 장곡소공원~ 봉일천교~ 금릉역~ 교하체육공원~ 송촌교
 +
*소요시간 : 16km, 1시간 (시속 20km 기준)
    
==생태 환경==
 
==생태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