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게리오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4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캠프 게리오언(Camp Garry Owen)은 한국전쟁 당시 문산읍 선유리 산10-1번지 일원에 주둔했던 부대이다. 해당 부지는 1954. 2.1일 미군기지로 공여되었다. 부대가 이전되면서 2004.12.1일 폐쇄되고 2007.4.13일 반환됐다. 파주시는 2019년 공여지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
캠프 게리오언(Camp Garry Owen)은 한국전쟁 당시 문산읍 선유리 산10-1번지 일원에 주둔했던 부대이다. 해당 부지는 1954. 2.1일 미군기지로 공여되었다. 부대가 이전되면서 2004.12.1일 폐쇄되고 2007.4.13일 반환됐다. 파주시는 2019년 [[캠프 게리오언 개발|공여지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File:410504항공사진.jpg|400px|섬네일]]
 
[[File:410504항공사진.jpg|400px|섬네일]]
  
29번째 줄: 29번째 줄:
 
본대는 동문천 남쪽, 현재의 선유산단 방향에 위치하고 동문천 트러스교가 있는 선유리 방향이 정문이다. 북동쪽으로 방송 안테나 시설과 수송대가 위치하고 있다.   
 
본대는 동문천 남쪽, 현재의 선유산단 방향에 위치하고 동문천 트러스교가 있는 선유리 방향이 정문이다. 북동쪽으로 방송 안테나 시설과 수송대가 위치하고 있다.   
  
문산으로 넘어 가는 고개길 좌측에는 미군 휴양소인 RC#4 (Recreation Center #4)는 미군의 여가 시간 활용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 등의 음식 제공되고 댄스홀과 카지노가 운영됐다. 미군부대 한국인 근무 관계자나 가족도 출입이 가능했다.  
+
문산으로 넘어 가는 고개길 좌측에는 RC#4(Recreation Center #4)라고 불리는 미군휴양소가 있었다. 미군휴양소는 여가 시간 활용을 위해 만들어졌고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 등의 음식을 제공하고 댄스홀, 카지노가 운영됐다. 미군부대 한국인 근무 관계자나 가족도 출입이 가능했다.  
  
 
미군 휴양소인 RC#4에는 체육관과 야구장 등의 시설이 있었으나 한국군이 인수하여 주둔하다가 현재는 그 자리에 군인 관사를 신축하여 이용하고 있다.
 
미군 휴양소인 RC#4에는 체육관과 야구장 등의 시설이 있었으나 한국군이 인수하여 주둔하다가 현재는 그 자리에 군인 관사를 신축하여 이용하고 있다.
39번째 줄: 39번째 줄:
 
=== 교량 재가설 ===
 
=== 교량 재가설 ===
 
[[File:410503garryowen1.jpg|400px|right]]
 
[[File:410503garryowen1.jpg|400px|right]]
선유리 캠프게리오언 주변에 있는 동문천은 1996년 수해로 1997년 말부터 하폭을 기존보다 넓히고 제방을 50㎝~2m 가량 높이는 개수공사를 3개 구간으로 나눠 추진했다.
+
선유리 캠프게리오언 주변에 있는 동문천은 1996년 수해로 1997년 말부터 하폭을 기존보다 넓히고 제방을 50㎝~2m 가량 높이는 개수공사를 3개 구간으로 나눠 추진했다.
  
개수공사 구간 중에 캠프게리오언 정문 앞은 하천 폭이 좁아 교량을 철거하고 재가설하기로 미군측과 파주시와 협의했다. 파주시는 미군측에 설계비 4억5천만원을 지원했고 미군측은 설계 완료후 공사비 60억원을 요청했다. 파주시는 공사비가 과다하다고 이의를 제기 했다. 부대 정문에 설치된 트러스교와 비슷한 길이 45m, 폭 8m의 교량을 300m 하류에 20억원 들여 준공한 상태였다.  
+
개수공사 구간에 포함된 캠프게리오언 정문 앞은 하천 폭이 좁아 기존 교량을 철거하고 재가설하기로 미군측과 파주시와 협의했다. 파주시는 미군측에 설계비 4억5천만원을 지원했고 미군측은 설계 완료후 공사비 60억원을 요청했다.  
 +
 
 +
파주시는 300m 하류에 설치된 독서교보다 공사비가 과다하다고 이의를 제기 했다. 독서교는 길이 45m, 폭 8m로 공사비 20억원 들여 준공한 상태였다.  
  
 
미군측은 공사 사업비는 테러방지용 공법을 이용한 교량으로 계산했다고 답변 했다고 한다. 교량 재가설 추진이 지연되다가 2010년 경에 기존 교량보다 1/4정도 확장된 현재의 트러스트 아치교량로 교체됐다.
 
미군측은 공사 사업비는 테러방지용 공법을 이용한 교량으로 계산했다고 답변 했다고 한다. 교량 재가설 추진이 지연되다가 2010년 경에 기존 교량보다 1/4정도 확장된 현재의 트러스트 아치교량로 교체됐다.
62번째 줄: 64번째 줄:
 
캠프게리오언 영상
 
캠프게리오언 영상
  
 +
===파주위키 사진===
 +
[[File:선유리표지.jpg|700px|link=http://photo.paju.wiki/photo/index.php?/category/72]]
 +
<br>
 +
[http://photo.paju.wiki/photo/index.php?/category/72 파주위키 앨범]
 +
 +
 +
 +
 +
'''더보기'''
 
----
 
----
*키워드: 캠프 게리오언, 캠프 게리오웬, 캠프펠헴, 캠프 라이스, 선유리, 공여지, 개발
+
*[[지금_여기, 선유리|선유리 마을 주민 채록담]]
  
'''더보기'''
 
 
<categorytree mode="pages" >미군주둔 </categorytree >
 
<categorytree mode="pages" >미군주둔 </categorytree >
 
<br>
 
<br>
78번째 줄: 88번째 줄:
  
 
<seo title="파주인의 백과사전 파주위키" metakeywords="파주, 파주시, 위키, 파주이야기, 파주위키" metadescription="캠프 게리오언, 캠프 게리오웬, 캠프펠헴, 캠프 라이스, 선유리, 공여지, 개발
 
<seo title="파주인의 백과사전 파주위키" metakeywords="파주, 파주시, 위키, 파주이야기, 파주위키" metadescription="캠프 게리오언, 캠프 게리오웬, 캠프펠헴, 캠프 라이스, 선유리, 공여지, 개발
  " />
+
  " "google-site-verification="G-VN56J4JGXJ"/>

2022년 9월 9일 (금) 22:43 기준 최신판

캠프 게리오언(Camp Garry Owen)은 한국전쟁 당시 문산읍 선유리 산10-1번지 일원에 주둔했던 부대이다. 해당 부지는 1954. 2.1일 미군기지로 공여되었다. 부대가 이전되면서 2004.12.1일 폐쇄되고 2007.4.13일 반환됐다. 파주시는 2019년 공여지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410504항공사진.jpg

부대 역사

캠프가 세워진 땅은 원래 사과 과수원이었고 1951년 한국 전쟁 당시 캠프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는 '캠프 라이스'라고 불렀다. 정전협상을 진행하던 1952년에는 유엔 사령부 (UNC) 군사 정전 회의 대표단의 본부로 사용됐다.

1951년 7월부터 정전협상이 시작됐고 1953.7.27일 오전10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이때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 수석대표로 북한군 대장 남일과 유엔군 대표단 수석대표 미육군 중장 월리K. 해리슨(William Kelly Harrison Jr.)이 참석했다.

휴전협정 당일 판문점에서 양국 수석대표단이 가서명하고 유엔군측 마크 W. 클라크 유엔사 사령관은 '캠프 라이스' 극장에서 서명했다.

게리오언부대 소속부대로 제69야전 포병 대대, 제 1 해병 사단 (제 7 보병 사단 제 49 야전 포병 대대가 됨), 13 야전 포병, 24 보병 사단, 제 19 야전 포병 연대 제 2 대대, 제 82 야전 포병 연대 제 5 ​​대대와 제1대대, 제4포병 연대 E 중대, 제 2 공병대대, 4-7 기병 연대 등 9개 부대가 주둔했었다.

2004년 캠프를 폐쇄하면서 대부분 동두천의 Camp Hovey로 이전했고 4-7기병 연대가 캠프 해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410507koreatrucesigned.png
1953.7.27일 13:00시 캠프라이스에서의 정전협정서 서명

부대 이름

캠프 게리오언(Camp Garry Owen)의 부대명은 처음 '캠프 라이스(camp Rice)'이었다가 1970년경에 '캠프 펠헴( Camp Pelham)'으로 바뀌었다.

캠프 펠헴은 판문점에서 양국 수석대표가 정전협정문을 가서명하고 유엔사 사령관이 '캠프 라이스' 극장에서 직접 서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부대명을 변경했다고 한다. 펠헴은 미국 남북전쟁시 혁혁한 공을 세운 John Pelham (1838년 9 월 7 일 – 1863년 3월 17일) 중위의 이름이다.

그 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980년경 게리오언( Garry Owen)으로 변경됐다. 개리오언( Garry Owen)은 미국 인디언 전쟁에서 수훈을 세운 커스터 장군이 즐겨 부르던 아일랜드 노래 가사에서 따 온것으로 알려졌다.

부대 시설

캠프 게리오언(Camp Garry Owen)은 본대를 중심으로 주변에 문화오락 시설, 방송 안테나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본대는 동문천 남쪽, 현재의 선유산단 방향에 위치하고 동문천 트러스교가 있는 선유리 방향이 정문이다. 북동쪽으로 방송 안테나 시설과 수송대가 위치하고 있다.

문산으로 넘어 가는 고개길 좌측에는 RC#4(Recreation Center #4)라고 불리는 미군휴양소가 있었다. 미군휴양소는 여가 시간 활용을 위해 만들어졌고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 등의 음식을 제공하고 댄스홀, 카지노가 운영됐다. 미군부대 한국인 근무 관계자나 가족도 출입이 가능했다.

미군 휴양소인 RC#4에는 체육관과 야구장 등의 시설이 있었으나 한국군이 인수하여 주둔하다가 현재는 그 자리에 군인 관사를 신축하여 이용하고 있다.

00px
게리오언 주변 전경,사진 ROK Drop

교량 재가설

410503garryowen1.jpg

선유리 캠프게리오언 주변에 있는 동문천은 1996년 수해로 1997년 말부터 하폭을 기존보다 넓히고 제방을 50㎝~2m 가량 높이는 개수공사를 3개 구간으로 나눠 추진했다.

개수공사 구간에 포함된 캠프게리오언 정문 앞은 하천 폭이 좁아 기존 교량을 철거하고 재가설하기로 미군측과 파주시와 협의했다. 파주시는 미군측에 설계비 4억5천만원을 지원했고 미군측은 설계 완료후 공사비 60억원을 요청했다.

파주시는 300m 하류에 설치된 독서교보다 공사비가 과다하다고 이의를 제기 했다. 독서교는 길이 45m, 폭 8m로 공사비 20억원 들여 준공한 상태였다.

미군측은 공사 사업비는 테러방지용 공법을 이용한 교량으로 계산했다고 답변 했다고 한다. 교량 재가설 추진이 지연되다가 2010년 경에 기존 교량보다 1/4정도 확장된 현재의 트러스트 아치교량로 교체됐다.

관련 정보

사진 자료

영상 자료


휴전협정 서명식


캠프게리오언 영상

파주위키 사진

선유리표지.jpg
파주위키 앨범



더보기



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