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서울을 기점으로 개성~사리원~평양~신안주를 거쳐 신의주까지 우리나라 관서지방을 관통하는 철도로서 총연장은 499km이다.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 만주로 연결되고 있으나, 지금은 남북분단으로 서울~도라산간의 55.7km만을 운행하고 있다. --pi 2022/02/25 11:37

경의선 금릉역 부근, 사진 파주위키

경의선 개설

배경 및 과정

경의선은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이 그 해 2월 21일 서울∼의주(499.3km) 간 군용철도 목적으로 군용철도감부에서 부설을 시작하다가 한국주재 일본군사령관 예하로 전속시켰다.

1904.3.12일에 용산~개성간, 4월 9일에 개성~평양간, 6월 25일에 평양~신의주 간의 노반공사를 착수했다. 10월 28일에는 용산~임진강 사이에 철도건설을 위한 임시열차가 운행됐다.

1905. 1. 26일에는 평양~신의주간의 철도가 완성되고1906. 3. 25일 난공사 지역인 청전강철교가 준공됨으로써 용산-신의주 전구간에 걸쳐 열차가 운행됐다.

철도가 완전 개통되면서 1906. 9.1일 관리권이 군용철도에서 통감부철도관리국으로 이관되었다. 1908년 4월 1일무터는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가 운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중·일 전쟁을 계기로 복선화가 진행됐다.

그 당시 철도부설을 위해 일본은 농번기에 농민을 강제로 끌어가고 식량과 가축을 징발하여 농촌이 공동화됐다. 1906년 5월1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철도 지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 남아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집에 아홉집은 텅 비었고, 천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까지 개탄했다.

일본은 이런 침탈 이외도 당시 철도역 부지를 넓게 책정하여 그 일대의 조선 농민을 내 쫓고 일본인들에게 싼 값에 넘겼다. 일본인 소유가 된 경의선 철도역 주변은 새로운 도로와 관공서가 세워지면서 일본인들을 돈방석에 앉게 했다.

파주 구간의 경의선은 부설 당시 일산 다음 역으로 금촌역과 문산역, 현재 휴전선 근처의 장단역이 있었다. 1956.5.11일 교하읍 야당리에 금촌역 관리의 운정역과 1967.9. 1일 파주역 봉암리 682-3번지 상에 문산역 관리의 파주역이 역무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개설됐다.

파주역 개설 당시 위치 선정에 따른 주내면(현재 파주읍)과 월롱면 주민과의 대립이 치열했다. 그런 중에 1965년 월롱면 위전리 주민 윤태영씨는 철로에 발을 묽고 런닝셔츠를 흔들어 기관차를 세우려다 실패하여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경의선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1년 6월 12일 운행이 중단되어 문산역이 종착역이 됐다. 이 곳의 철도중단점이라는 간판이 민족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가 철도 중단점이 임진각 관광지로 옮겨지면서 관광객들이 기념촬영하는 필수 코스가 됐다.

경의선 이용

경의선은 파주를 관통하는 철도로서 별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던 그 시절에 신설된 역 중심으로 도로와 상가가 생기면서 파주 지역에 많은 변화를 갖게 했다.

1936년도 서울(당시 경성)행 열차는 장단에서 20:29분, 문산 20:49분, 금촌:21:00에 각각 출발하여 서울역에 21:50분에 도착했다. 1977년에는 문산발 서울행은 새벽5시 열차를 첫 차로 05:50분, 06:40분, 07:10분, 08:20분에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과 학생을 위한 통근열차로 배차했다. 그 시간 후에는 1시간 간격으로 배차하였으며 21:20분이 마지막 기차였다.

1960년대 기차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서 농촌에서는 직접 경작한 농산물을 개인이 운반할 수 있는 만큼 포장하여 아침 첫차를 타고 서울역과 용산 등에서 노점 판매했다.

농산물 이외에도 미군부대에서 불법으로 빼낸 미군물자도 기차로 운반했다. 미군물자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타인의 의자나 선반에 감추었다. 이때 이런 약점을 아는 통학생들은 짐보따리를 면도칼로 찟어 담배나 초콜릿을 빼 먹는 사례도 있었다.

당시 파주에는 고등학교가 부족하여 서울의 성동공고, 동도공고, 용산공고, 숙명여고, 서울여자상고 등으로 학생들이 진학하면서 경의선을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됐다. 일부 금촌 학생들은 금촌역 진입을 위해 저속으로 달리는 공릉천 칠간다리에서 뛰어내려 하천에서 놀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1960년대말 당시 학생들의 기차요금은 일반 버스보다 저렴하여 당시 자장면이 1그릇에 30원일때 학생 요금은 한 달에 200원 정도였으며 통학하는 학생들은 새벽에 아침을 먹고 버스나 도보로 역까지 와서 기차를 이용했다.

월롱역 신설과 파주역 이전

1960년대 파주역 신설 당시 파주읍과 월롱면 주민의 마찰로 월롱과 파주읍의 중간 지점인 봉암리에 신설했다. 신설된 역 주변에는 민가가 없었고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도보로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월롱면 위전리 주민 768명은 지역에 민가가 없어 범죄 발생 취약하고 기차 이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1996년 10월에 파주역 이전을 파주시의회에 청원했다.

철도청은 현 월롱역 위치가 경사지이어서 역사 설치가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파주시는 철로 숭상공사와 간이역 설치 사업비 4억원, 파주역 신설부지 매입비 1억원을 자치단체에서 부담하여 역사를 설치하는 것으로 철도청과 협의 했다.

철도청은 현지 답사를 통해 1997.2.11일 설명회를 개최하고 공사를 추진해 1998. 1.17일 월롱역과 파주역을 준공했다.

경의선 현대화

남북철도 연결사업 추진

남북은 1992.2.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하여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면서 남북철도 연결을 명시했다.

2000년 7월 1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서울~ 신의주간 총연장 499㎞ 중 남측의 문산 선유리~ 장단간 12㎞와 북측의 장단~ 개성간 12㎞ 등 총 24㎞를 복원하려는 사업으로 남북 당국은 2000년 9월14일 기공식을 갖고 2001년 9월 동시 개통키로 했다.

경의선 문산~장단간 철도연결은 사업비 전체 906억원으로 문산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11.3km로 터널 6개소 897m, 교량 1개소 290m, 정거장 2개소(임진강역, 도라산역)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2002년 9월 경의선 연결공사가 착수되고 2003년 6월 군사분계선 철로가 연결되었으나 핵문제 등 북미 관계 악화로 무산됐다.

남북은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2007년 5월 군사보장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운행이 중단된지 56년만에 열차를 시험운행 하였고 7개월 후 2007. 12. 11일에는 개성공단의 자재와 생산 물량의 수송을 위해 문산‐봉동간 화물열차 운행을 시작하므로서 경의선의 유럽 연결을 위한 첫 걸음을 나서게 됐다.

문산~장단간 연결

문산~장단간 철도연결은 1990.4월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1992년도에 임진강 이남지역의 본선 구간 용지에 대한 매입을 마쳤다.

남북정상회담에 따라 철도 연결이 본격 추진되었으며 공사 기간은 당초 2000.9.9 ~ 2004.12.31일까지 4개년이었으나 용도지역 변경 등 행정소요기간이 필요하여 2021.12.31일로 변경됐다.

파주시는「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법률」에 따라 수용 대상토지에 대한 이해 관계인의 의견을 2021.5.14~5.28일까지 접수했다. 수용대상 필지는 문산읍 선유리 859번지 등 전체 50필지로 37,125㎡가 해당된다. pi 2021/05/17

복선 전철화 사업

경의선 복선전철화 사업은 수도권 서북부지역 개발촉진과 교통편의 제공을 위해 1999년에 공사를 착공했다.

복선전철화 사업은 경의선 용산~문산간 48.6km를 디젤기차로 운행되던 단일 선로를 복선 전철화하는사업으로 전체 2조4,252억원이 소요됐다. 1992년 타당성조사에서 BC=1.62가 나왔고 2000.9월에 실시설계를 완료했다.

공사착공후 2009.7.1일 디엠시-문산간 일부가 완공되었으며 2014.12.26일 전 구간 공사를 완료한 수도권 전철 경의선과 수도권 전철 중앙선이 직결되면서 경의·중앙선으로 개통됐다. 이에따라 열차 이동시간을 30분 단축되고 열차 운행시간도 164회 176회로 확대 됐다.--pi2022.11.21.

이 사업에 따라 1956.5.11일 매표소 무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던 운정역은 2009.3.10 구역사는 철거되고 2009.3.1부터 임시역사가 운영됐다.

금릉역은 금촌 제2택지지구 조성에 따른 교통편의와 금촌역의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전철복선화 사업에 포함해서 역사를 신설할 계획이었으나 사업이 지연되자 새꽃마을 3단지 건너편으로 임시역사를 운영했다.

금릉역 임시역사 2008년, 사진 파주위키

야당역 신설

야당역은 2013.7.1일 관계 기관간 야당역 신설협약을 체결하고 2013.8.26일 실시설계를 착수하여 2015.10.31일 개통했다.

야당역 신설은 운정1,2지구 계획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은 역이다. 이 지역은 운정역과 일산 탄현역 사이의 3.6km 구간 안에 위치해 기차역사 설치가 어려웠다. 더욱이 운정신도시 개발과 함께 GTX 개설과 전철 3호선 연장 등 대형이슈가 집중된 시기였다.

2012년 한빛마을과 한울마을 아파트에 2만2천세대 6.5만명의 입주가 예정되면서 야당역 신설 여론이 부상됐다. 이 지역 주민들은 2011년 초부터 파주시와 지역구 국회의원 등 관계기관에 진정을 했지만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2011.5.27일부터 '야당역 설치 1만인 서명'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2012.4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자와 한국주택공사 등에 야당역 신설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야당역 신설이 운정3지구 택지개발사업에 반영되면서 운정3지구 교통분담금으로 역사를 2017년까지 준공하는 계획이 확정됐다. 그러나 주민들은 아파트 입주시기에 맟추어 임시 역사 건립을 요구했다.

임시 역사 설치후 본 역사 공사에 따른 사업비 중복으로 임시 역사 건립은 무산되고 2015년까지 역사를 조기 준공하기로 했다. 파주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 한국토지주택공사가 2013년 야당역 신설 협약을 체결하면 설계와 사업 시행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야당역 전경 2021년, 사진 파주위키

운천역 개설 추진

운천역은 경의선 복원공사로 문산~도라산 구간이 단선으로 복원되면서 운천리와 마정리 주민의 교통편의를 위해 2004.10.31일 임시 승강장으로 신설됐다.

2007년 문산역까지 복선전철로 연결되고 2019년 문산역~임진강역까지 전철화 사업이 추진되면서 운천역이 폐쇄될 예정이었다. 2019.5.13일 운천역추진위원회가 '운천역 승하차 시설 건립 및 전철 정차' 건의서를 파주시 등 관계 기관에 전달했다.

국토교통부가 경제성 부족으로 운천역 유지가 어렵다하자 파주시는 역사건립비와 영업손실보전금 40여억원 부담하는 것으로 추진했다. 2019.9.27일 경의선 운천역 타당성 조사후 국가철도공단과 위수탁협약을 체결했다. 파주시는 문산읍 운천리 83-40번지 일원에 운천역사 건립 비용으로 전체 91억원을 부담해 2022.10월에 준공하기로 했다.

운천역사 개설이 확정되자 2020.8월 역사 신축설계공모를 추진하고 2021.7.2일 경의중앙선 운천역 건립 착공식을 개최했다. 이 역사는 2022년 상반기에 완공계획으로 공사가 추진됐다.

운천역사 공사는 당초 60억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사업을 추진했으나 한국철도공사가 간이역에서 관리역으로 전환하고 건축 연면적을 404㎡으로 확대 및 주차장 공사 추가 등으로 전체 92억원의 사업비가 소요 됐다.[1]--1pi2022.12.29.

운천역 착공식 2021년, 사진 파주시

역사 준공

파주시가 국가철도공단·한국철도공사와 위수탁협약 체결을 통해 건립된 운천역이 2022.1.16일 준공식을 갖는다. 2022.6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시험운행을 완료하고 2022.12.17일 운행을 시작한다. 운천역은 대합실 없이 바로 승강장으로 입장하는 구조로 평일 2회, 주말 4회씩 운행될 예정이다.[2] --pi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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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 파주저널 (2011.5.28)일자 -운정신도시 윤치현 야당역추진위원장 인터뷰
  • 파주시 정책실명제- 경의선 운천역 신설
  • 연합뉴스(2019.9.17)
  • 나무위키 야당역
  1. 파주시의회 제229회 제3차 도시산업위원회(2021.11.25 목요일), 2022년도 예산안 심의 회의록
  2. 파주시 보도자료 2022.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