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10.16일 광탄면 신산리 장터에 있는 대장간에서 포탄 폭발사고로 3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위치
사고 지역은 현재 광탄중학교 진입로 시장 부근으로.한국 전쟁후 광탄면사무소가 위치하면서 형성된 재래장터이다.
재래장터 북쪽으로는 당시 광탄중학교가 위치하고 동쪽으로 200여m 거리에는 광탄면사무소와 파출소가 있었으며 주변에는 방앗간과 포목점, 가구점, 쌀가게 등이 밀집되어 있다.
사고가 발생힌 곳은 80여평의 공터와 인접한 '광탄어귀장터 대장간'에서 발생했다. 대장간은 일명 싸전마당이라고 불리는 서쪽에 인접했다.
사고가 난 대장간은 당시 미군은 신산3리 캠프스탠터 현재 육군1사단 자리의 미군 7사단 주둔하고 있었으나 광탄지역은 대부분 농사가 주업으로 대장간이 시장에 자리 잡았다.
사고 발생
한국전쟁 후에는 불발탄 포탄이나 미군 훈련 중에 버려진 탄피 등을 회수하여 고물로 팔기도 했다. 당시 탄피 껍데기는 1관에 40원 정도로 쌀 80키로 한가마가 3,400원 정도이므로 쌀 1키로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대장간 주인 최씨 등의 일행은 1965.10.16일 토요일 오후 3시경 155미리 포탄을 분해하기 위해 광탄고등공민학교(현 광탄중학교) 운동장에서 30여분 동안을 작업을 했다. 이날 학생들은 토요일이어서 오전에만 수업이 있었고 학교 운동장에는 10여명의 어린이가 놀고 있었다. 이웃 주민 김경봉씨가 어린이 놀고 있어 위험하다고하여 최씨 일행은 다시 대장간으로 되돌아 갔다.
오후3시50분쯤 뇌관을 망치로 치는 과정에서 폭탄이 터져 작업하던 일행과 주변에 거주하던 어른과 아이들 38명이 사망하거나 부상 당했다.
사고 내용
신산리 폭발물 사고로 15명이 사망하고 23명이 중상을 입어 전체 38명의 사장가 발생했다. 사망자중 작업을 했던 대장간 주인 최씨와 엿장수 초씨 등 8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5명은 오산리 44후송병원에서 치료 중에, 1명은 부천시제121병후송병원 후송 도중에 사망했다. 사망자 1명은 사고 현장에서 80m 떨어진 분수천에 시체의 머리만 발견됐다.
사망자중 두살 아이가 3명, 5세 1명, 13세 1명 등이 포함되고 5세 미만의 어린이도 3명이나 부상을 입었다.
사고 처리
1965.10.17일 오후3시 사망자 15명애 대한 위령제를 광탄면사무소에서 거행하고 시체 8구는 유족에게 인계하고 나머지 7명은 신산리 공동묘지에 매장했다.
여론 여담
주민 증언
".... 벼를 베고 할 때니까 딱 요맘때 였네요. 우리 집은 지금의 광탄면 사무소쪽 동거리동에 있었는데 시장에 가기 위해 집 문을 여는데 하늘 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꽝'나더니 파편들이 마치 하늘에 낙엽처럼 둥둥 떠다녔어요. 인근에 우물이 두 개 있었는데 거의 핏물로 변했지. 면사무소 앞에 관들이 큰관 작은관 널려있고 팔이 떨어져 나간 사람 다 리가 잘려나간 사람 어휴 전쟁보다 더한 난리였어요." [1]
포탄 위력
155미리 포탄의 위력은 반경 20피트 이내에 1880개의 파편이 날아가 인명을 살상하고 건물 및 기물을 파괴, 반경 7백피트 이 내에는 420개의 파편이 난무하여 8분의 1인치 펄판을 72개의 파편이 뚫고 들어갈 수 있으며 반경 3백피트 이내에서는 4분의 1인치 철판을 88개의 파편이 뚫고 들어갈 수 있다. [2]
미디어 자료
신문스크랩
- 경향신문 1965.10.18일자
- 동아일보 1965.10.18일자
- 사고지역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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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