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교

리비교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건설한 파평면 장파리와 진동면 용산리를 잇는 임진강 교량이다.

1950년경 리비교, 북쪽에서 본 장파리

개요

1950년 한국전쟁시 작전교량으로 이용되던 교량이 홍수로 유실되자 미군 측은 홍수에 견딜말한 교량을 재가설해 1953년 완공했다.

휴전후 파평과 적성지역의 주민과 군부대의 민통선 관문으로 이용되어 왔다. 작전용으로 이용되던 리비교는 60년이 지난 2016년에 위험교량으로 판정 받아 교량을 보수·보강하여 관광용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작전 교량 건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1년후 미1군단사령관은 1952.10월말경 제2건설공병단 소속 제84건설공병대에게 홍수시기를 감안해 1953년 7월까지 교량을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리비교 공사는 사실상 1952.12.26일 착공하고 6개월만인 1953.7.4일 준공됐다. 리비교의 공법은 미국 모든 주의 고속도로 시스템에 도입할 만큼 뛰어난 기술력과 완성도를 자랑했다.

교량 규모

교량은 파평면 장파리에서 진동면 용상리를 연결하고 연장 328m, 교량폭 7m로 교각 높이가 건물 10층 높이에 달하는 45m이고 8개의 교각으로 구성됐다.

명칭 유래

리비교를 건설하는 동안 두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59년 1월 1일 카투사 김호덕 상병은 7번 교각에서 폭약이 폭발해 사망했다. 제임스 오그라디(James E. O’Grady)일병은 1953년 4월 16일 배가 뒤집혀 익사할 위기에 있는 한국 민간인 노동자를 구하다가 익사했다.

84건설공병대 지휘관은 이 두 명의 이름을 다리 이름으로 제안하였으나, 미8군 사령관부에서는 1950년 7월 20일 한국 대전지구 전투 영웅으로 용감한 행동과 영웅적 자기희생으로 사후에 명예훈장을 받은 3전투공병대대 병장 조지 리비(George D. Libby)의 이름을 따서 짓도록 지시했다.

교량 재개설

2016.9.20일 통행금지 수준의 위험 교량으로 판정 받았다. 파주시는 교량 소유권을 국방부에서 파주시로 양도받아 리비교를 보수·보강하여 관광용으로 이용하려했다.

민관군 협의회에서의 양방향 교행 요구와 군부대 협의조건 이행에 따라 당초 보수·보강 수준에서 기존 교량을 철거하고 재가설로 변경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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