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계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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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의 남안인 적성면 주월리 413번지 일원에 있는 백제의 평지토성으로 경기도지정 기념물 제217호이다.

육계토성 전경

개요

임진강 유역의 남안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의 평지토성으로 이곳은 임진강이 사행곡류하여 북쪽으로 돌출해 있는 만곡부로 도하하는 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육계토성의 둘레는 약 1,700m로 평면은 동북·서남 방향에 장축을 둔 장타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면적은 315,035㎡이다. 내성의 중앙부 토루는 1996년 홍수 때 사라졌으며 서편 토루는 군부대의 방벽으로 이용되고 있다.

외성은 판축기법으로 축조하였는데 동남쪽 내벽구간에서는 하부에 현무암석재와 강돌을 이용하여 높이 1m 내외로 보강한 석축이 관찰된다. 토루는 서남쪽 구간에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높이 3~5m, 너비 4~6m 정도이다.

내성에는 너비 10~20m의 평탄한 단을 두고 있으며 그 안쪽으로 3~5m 아래에 성 내부 평탄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문지는 동문지·남문지·서문지를 각 방향에 따라 조성하였으며 동남벽과 서남벽의 회절부 안쪽에 우물지 2개소가 남아 있다.

특히 서문지 부근에는 동서로 길게 뻗은 저습지가 남벽부를 따라 성안의 중간부까지 형성되어 있으며 성밖으로는 서쪽 강변까지 이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위치

육계토성 일대는 임진강이 북쪽으로 크게 굽어 흘러가며 남쪽으로 넓고 평평한 단구지대가 펼쳐져 있다. 단구지대의 기반암은 현무암으로 그 위로 진흙 충적층이 형성되어 곳곳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다.

육계토성 북쪽의 임진강은 수심이 낮은 여울이 형성되어 배를 타지 않고도 걸어서 건너갈 수 있다. 임진강은 용암대지를 침식하여 흐르는 곳이 대부분으로 강 양안에는 백리장성이라 부르는 절벽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중 도강이 비교적 쉬운 곳은 지류가 유입되면서 절벽을 침식하여 강으로 진입이 용이하면서 여울이 발달하였다. 이런 곳에는 고대부터 교통로로 활용되었으며 강변에 성이나 보루가 축조되어 군사방어시설로 활용됐다.

출토 유물

백제주거지 중 ‘凸’자형태의 한양대 2호 주거지 내부에서는 온돌시설과 판재로 만든 벽체가 확인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사이광구호(四耳廣口壺), 장동호와 같은 고구려 토기와 대형 항아리, 철모, 찰갑 등도 출토되었다. 여기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들은 한강유역이나 양주지역에서 출토되는 고구려 토기에 비하여 좀 더 빠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 마을에서 고구려토기가 출토되는 현상에 대하여 고구려군이 백제 마을이나 육계토성을 점령하여 군사기지로 활용하였을 가능성을 추정하기도 한다. 또한 고구려계 주민들이 이주하여 왔거나 교역을 통해서 고구려 토기가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광구단경호 / 굽다리접시 / 연옥장신구 / 토기뚜껑 / 시루

문헌 기록

『대동지지(大東地志)』와 『여도비지(與圖備誌)』에 ‘치소 서쪽 7리에 있으며 토축으로 둘레는 7,692척(약2,300m)이며 장단의 호로고루(瓠蘆古壘)와 상대한다’고 했다.

『적성현읍지(積城縣邑誌)』에는 ‘육계토성 북변 강가에 소돈대가 있었는데, 속전에는 옛 궁궐의 종을 매단 곳이다’라고 했다.

허목의 『기언별집(記言別集)』 권 15 「기행 무술(1658) 주행기」에 이 지역을 답사하고 기행문을 남겼다. “날이 저물어 돛을 올리고 호로탄으로 올라가니 여기는 호로하이고, 그 위에는 육계이다. 또 옛날 진루가 있었는데 앞의 여울은 아주 험하여 사미천이 여기에 들어온다. 상류에 옛 성이 있고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여 있는데 석벽으로 인하여 요새를 삼았다. 강가의 부로(父老)들 사이에 전하여 오기를, 옛날 만호(萬戶)의 진루였다고 하나 이것을 알 수 없고, 고려 때에 여러 번 거란의 병화를 입었으니 이곳은 전쟁터로 오늘날까지 옛 자취가 이와 같은가."

학술연구조사 업무협약 체결

파주시와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소는 2021.7.30일 육계토성의 중장기 학수조사연구를 위한 협무협을 체결했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 육계토성 등 파주시의 문화재 보존·관리 등에 관한 학술조사·연구, ▲ 육계토성 등 문화재 학술조사연구의 원활한 업무추진을 위한 제반 업무지원·협력 등이다.

파주 육계토성은 조선 시대 문헌기록을 통해 옛 성터라는 것이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으로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학술적으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육계토성에 대한 발굴조사는 1996년 임진강 유역 일대의 대홍수로 인한 긴급수습조사를 비롯해 최근까지 토성 내부의 일부 구간에서 간헐적으로 이루어진 바 있으며, 서울 풍납토성에서 보이는 집터, 백제토기, 고구려 토기 등이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후에 충분한 학술조사연구가 이어지지 않아 토성을 축조한 집단의 주체와 토성의 정확한 규모와 구조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2022년 발굴조사 결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2020.7.26일 육계토성 발굴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굴조사는 파주시와 2021.7.30일 협약에 의해서 2022.3월부터 추진됐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하여 유계토성이 처음 축조된 시기가 백제 초기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판축층에서 수습한 목탄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토성 축조의 중심 연대는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전반인 것을 확인했다.

판축(版築)은 성벽, 담장, 건물의 기단 등을 조성하기 위해 판으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흙이나 모래 등을 층층이 부어 방망이 등으로 찧어서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대표적인 고대 토목 기법 또는 건축 기법으로 ‘달구질’이라고도 한다.

동쪽 성벽의 일부 구간에서 서울 풍납토성과 유사하게 사각형(방형)의 틀을 짠 후 틀 안에 일정한 두께의 흙을 교대로 쌓아올린 판축기법이 확인된 것이다. 토성은 판축(版築)과 성토(盛土) 기법을 함께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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