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진돈대
장산진돈대는 문산읍 장산리 산7-1번지 임진강 장산진 일대에 있다.
지역 특징
지금의 문산읍의 장산리 지역은 도성의 방어를 위해 중요한 지역으로, 국가에서 관리가 이뤄졌던 군사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의 파천로로 사용되었고, 정묘호란 때는 후금군의 도강을 막기 위한 방어선이 구축되기도 했다.
돈대는 임진강 남안에 구릉성 산지의 능선 정상부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구릉은 장산나루와 인접하고 있으며, 거리는 약 2km 정도이다. 능선 정상부는 해발 38m정도이나 주변에 충적평야와 임진강이 있어 관측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위치는 적이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고 방어하는 돈대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꼭 맞는 곳이다
돈대 설치
숙종 때는 임진나루 및 관청 소유의 선박인 관선(官船) 관리를 맡던 도승을 별장(別將)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일대 관방을 재편한 것은 영조 30년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영조는 도성의 외곽 방어체계를 강화하고, 도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임진강 일대의 방어체계를 개편했다. 이에 임진나루는 임진진(臨津鎭)으로 바꾸고, 강의 하류에 있는 장산진(長山鎭)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경기지역의 경비를 위해 만들어진 총융청(摠戎廳)에 소속시켰다. 이런 때를 같이 하여 장산진돈대는 영조 30년(1754)에 설치되었다.
장산진에서 관할하는 돈대는 총 8개소에 이른다. 돈대의 뒤로는 장산진성(長山鎭城)이 축성되어 있어서 상호 간의 연계방어체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임진진성(臨津鎭城)과도 약 1km의 거리에 있다. 이 때문에 적의 침투 시에는 유기적인 방어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아울러 도강처(渡江處)가 될 수 있는 나루터의 배후에 있어 강으로 접근하기 쉽고 배를 정박하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돈대의 규모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발굴된 유적과 정확한 규모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1942년에 발간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돈대의 규모와 구조에 대한 기록이 있어 대강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돈대는 모두 흙으로 쌓은 토축(土築) 성곽이고 숫자는 8개소였다. 크기는 1돈대에서 8돈대의 둘레가 39~176m로 다양하였다. 그리고 제4돈대는 일부 돌로 쌓은 석축이 있었다. 형태는 원형 또는 타원형이었다. 돈대의 높이는 3.6m이고 돈대로 들어가는 성문도 설치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