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뀜

1 바이트 추가됨 ,  2022년 8월 12일 (금) 14:48
잔글
22번째 줄: 22번째 줄:  
허준묘를 발견한 이양재씨는 1930년도에 국세조사를 집대성한 <조선의 성(朝鮮의 姓:1934년>에는 구암 주변에 집성촌 뿐만 아니라 가옥이 전혀 없다고 되어 있어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허준묘를 발견한 이양재씨는 1930년도에 국세조사를 집대성한 <조선의 성(朝鮮의 姓:1934년>에는 구암 주변에 집성촌 뿐만 아니라 가옥이 전혀 없다고 되어 있어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
2000년에 발표된 김호의 '동의보감 편찬의 역사적 배경과 의학론'에 의하면 양천허씨의 세거지인 장단에서 허준이 1539년에 출생한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허준의 아버지인 허론은 부모상으로 1537년 전라도 부안 군수직을 사임하고 2년 후인 1539년에 허준이 출생한 것을 근거로 했다.[paki 2022년 8월 12일 (금) 14:44 (KST)]  
+
2000년에 발표된 김호의 '동의보감 편찬의 역사적 배경과 의학론'에 의하면 허준은 양천허씨의 세거지인 장단에서 1539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허준의 아버지인 허론은 부모상으로 1537년 전라도 부안 군수직을 사임하고 2년 후인 1539년에 허준이 출생한 것을 근거로 했다.[paki 2022년 8월 12일 (금) 14:44 (KST)]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있더라도 부모상으로 묘소 주변에서 삼년상을 치루는 경우에는 사직이 가능해 허론이 부안군수를 사직할 수 있었다.[paki 2022년 8월 12일 (금) 14:47 (KST)]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있더라도 부모상으로 묘소 주변에서 삼년상을 치루는 경우에는 사직이 가능해 허론이 부안군수를 사직할 수 있었다.[paki 2022년 8월 12일 (금) 14:47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