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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바뀐 것이 없음 ,  2022년 8월 18일 (목)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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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일합방 직후 일제는 전국의 객사를 철거하려고 했지만 조선인의 반발로 신교육을 위한 학교로 전환했다고 한다.
 
당시 한일합방 직후 일제는 전국의 객사를 철거하려고 했지만 조선인의 반발로 신교육을 위한 학교로 전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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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후 파주국민학교가 있던 객사가 소실되면서 동헌 위치로 옮겨 재건됐다. 1953년 소실된 객사 부지에는 미1군단 CIC부대가 주둔하다가 한국군 기무부대로 이관됐다.  <ref>파주목 객사영역의 건축특징학술고증연구 보고서, 희우에이앤씨건축사사무소(주), 2019.10월</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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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후 파주국민학교가 있던 객사가 소실되면서 동헌 위치로 옮겨 재건됐다. 소실된 객사 부지에는 1953년 미1군단 CIC부대가 주둔하다가 한국군 기무부대로 이관됐다.  <ref>파주목 객사영역의 건축특징학술고증연구 보고서, 희우에이앤씨건축사사무소(주), 2019.10월</ref>  
    
현재까지 알려진 파주목 관아지의 부지규모는 객사였던 국군 제501 기무부대와 구 파주읍사무소가 72천여㎡이고 <ref>파주목 관아터 문화재지표조사 보고서</ref>  동헌이었던 파주초교 부지가 21천여㎡로 전체 93천여㎡(28천여평,금촌택지 C3블록의 2.2배)이다.  이외에도 연무정,사당, 무기고 등을 포함하면 10만여㎡ 이상의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파주목 관아지의 부지규모는 객사였던 국군 제501 기무부대와 구 파주읍사무소가 72천여㎡이고 <ref>파주목 관아터 문화재지표조사 보고서</ref>  동헌이었던 파주초교 부지가 21천여㎡로 전체 93천여㎡(28천여평,금촌택지 C3블록의 2.2배)이다.  이외에도 연무정,사당, 무기고 등을 포함하면 10만여㎡ 이상의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