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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군의 행정을 관할하는 읍치는 현재 파주 장릉이 있는 탄현면 갈현리에 있었다. 장릉은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으로 문산읍 운천리에 있다가 1731년 갈현리로 이전됐다. 이때 교하군 읍치는 금촌으로 옮겨졌다.
 
교하군의 행정을 관할하는 읍치는 현재 파주 장릉이 있는 탄현면 갈현리에 있었다. 장릉은 인조와 인열왕후의 능으로 문산읍 운천리에 있다가 1731년 갈현리로 이전됐다. 이때 교하군 읍치는 금촌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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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관 이의신이 교하 천도를 주장한 위치가 교하리 또는 갈현리 주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교하천도를 논의할 때는 교하군 읍치가 갈현리에 있었다. 이곳에 대한 풍수는 장릉을 이전할 때 왕에게 보고됐던 기록에 남아 있어 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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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관 이의신이 교하 천도를 주장한 위치가 교하리 또는 갈현리 주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교하천도를 논의할 교하군 읍치는 갈현리에 있었다. 이곳에 대한 풍수는 장릉을 이전할 때 왕에게 보고됐던 기록이 남아 있어 길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기록에는 한북정맥에서 분맥한 오두지맥의 지기가 문산천과 [[공릉천|공릉천]]이 호위하고 있는 월롱산에 모여 갈현리로 내려와 강한 기를 갖고 있는 용맥이라 했다.   
 
그 기록에는 한북정맥에서 분맥한 오두지맥의 지기가 문산천과 [[공릉천|공릉천]]이 호위하고 있는 월롱산에 모여 갈현리로 내려와 강한 기를 갖고 있는 용맥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