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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에는 설인귀와 관련된 지명 유래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마지리(馬智里)는 설인귀가 말을 타고  지나 다녀  말발굽 자국이 많다하여 마제리(馬帝里 )리라 하였다가 마지리가 됐다. 무술을 연마한 마을은 무건리(武建里), 추운 겨울날 눈이 쌓인 감악산 봉으로 말을 달렸다고 해서 설마리(雪馬里)라고 부른다.
 
적성에는 설인귀와 관련된 지명 유래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마지리(馬智里)는 설인귀가 말을 타고  지나 다녀  말발굽 자국이 많다하여 마제리(馬帝里 )리라 하였다가 마지리가 됐다. 무술을 연마한 마을은 무건리(武建里), 추운 겨울날 눈이 쌓인 감악산 봉으로 말을 달렸다고 해서 설마리(雪馬里)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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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인귀가 신격화 된것은 통일 신라 이후 설인귀를 감악산 산신으로 추앙해 고구려 유민들이 옛 고구려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없애고 고구려의 멸망이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려고 했다고 한다. ((-설인귀 전설의 비교 고찰, 이기형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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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인귀가 신격화 된것은 통일 신라 이후 설인귀를 감악산 산신으로 추앙해 고구려 유민들이 옛 고구려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없애고 고구려의 멸망이 신라가 아닌 당나라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려고 했다고 한다. <ref>설인귀 전설의 비교 고찰, 이기형 2006년</ref>
    
=== 임꺽정 ===
 
=== 임꺽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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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이 도적이 된 명확한 계기나 시기는 알기 힘들지만 아마도 백정으로서 겪어야 할 신분적 차별과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임꺽정이 도적으로 활동하던 무대가 되었던 명종 대에는 명종의 나이가 아직 어린 탓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그 동생인 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하고 부정부패와 전횡을 일삼아 나라가 안팎으로 어지러웠으며 관리들이 부패하여 민생이 어려웠던 시기였다.
 
임꺽정이 도적이 된 명확한 계기나 시기는 알기 힘들지만 아마도 백정으로서 겪어야 할 신분적 차별과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임꺽정이 도적으로 활동하던 무대가 되었던 명종 대에는 명종의 나이가 아직 어린 탓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했고 그 동생인 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하고 부정부패와 전횡을 일삼아 나라가 안팎으로 어지러웠으며 관리들이 부패하여 민생이 어려웠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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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은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 틈을 타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불평 분자들을 선동하여 황해도및 함경도를 중심으로 각지의 관아와 민가의 재물을 훔치며 종횡무진하였다. 이 때 악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임꺽정이 한 고을에 나타났다 하면 짐을 나르던 사람들이 길을 나서기를 두려워하여 교통이 끊어질 지경이었다고 전한다((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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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은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 틈을 타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불평 분자들을 선동하여 황해도및 함경도를 중심으로 각지의 관아와 민가의 재물을 훔치며 종횡무진하였다. 이 때 악명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임꺽정이 한 고을에 나타났다 하면 짐을 나르던 사람들이 길을 나서기를 두려워하여 교통이 끊어질 지경이었다고 전한다. <ref>나무위키</ref>
    
임꺽정봉은 감악산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3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임꺽정봉은 감악산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3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