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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가 완전 개통되면서 1906. 9.1일 관리권이 군용철도에서 통감부철도관리국으로 이관되었다. 1908년 4월 1일무터는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가 운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중·일 전쟁을 계기로 복선화가 진행됐다.
 
철도가 완전 개통되면서 1906. 9.1일 관리권이 군용철도에서 통감부철도관리국으로 이관되었다. 1908년 4월 1일무터는 부산∼신의주 간 직통 급행열차인 융희호가 운행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후 중·일 전쟁을 계기로 복선화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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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철도부설을 위해 일본은 농번기에 농민을 강제로 끌어가고 식량과 가축을 징발하여 농촌은 공동화되었으며 1906년 5월1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철도 지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 남아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집에 아홉집은 텅 비었고, 천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까지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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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철도부설을 위해 일본은 농번기에 농민을 강제로 끌어가고 식량과 가축을 징발하여 농촌이 공동화됐다. 1906년 5월1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철도 지나는 지역은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 남아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집에 아홉집은 텅 비었고, 천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고까지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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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런 침탈 이외도 당시 철도역 부지를 넓게 책정하여 그 일대의 조선 농민을 내 쫓은 후 일본인들에게 싼 값에 넘기고 철도역 주변에 새로운 도로와 관공서를 세워 교통중심지로 만들어 일본인들을 돈방석에 앉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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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런 침탈 이외도 당시 철도역 부지를 넓게 책정하여 그 일대의 조선 농민을 내 쫓고 일본인들에게 싼 값에 넘겼다. 일본인 소유가 된 경의선 철도역 주변은 새로운 도로와 관공서가 세워지면서 일본인들을 돈방석에 앉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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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구간의 경의선은 부설 당시 일산 다음 역으로 금촌역과 문산역, 현재 휴전선 근처의 장단역이 있었으며 1956.5.11일 교하읍 야당리에 금촌역 관리의 운정역과 1967.9. 1일 파주역 봉암리 682-3번지 상에 문산역 관리의 파주역이 역무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개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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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구간의 경의선은 부설 당시 일산 다음 역으로 금촌역과 문산역, 현재 휴전선 근처의 장단역이 있었다. 1956.5.11일 교하읍 야당리에 금촌역 관리의 운정역과 1967.9. 1일 파주역 봉암리 682-3번지 상에 문산역 관리의 파주역이 역무원 무배치 간이역으로 개설됐다.
    
파주역 개설 당시 위치 선정에 따른 주내면(현재 파주읍)과 월롱면 주민과의 대립이 치열했다. 그런 중에 1965년 월롱면 위전리 주민 윤태영씨는 철로에 발을 묽고 런닝셔츠를 흔들어 기관차를 세우려다 실패하여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파주역 개설 당시 위치 선정에 따른 주내면(현재 파주읍)과 월롱면 주민과의 대립이 치열했다. 그런 중에 1965년 월롱면 위전리 주민 윤태영씨는 철로에 발을 묽고 런닝셔츠를 흔들어 기관차를 세우려다 실패하여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