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뀜

53 바이트 제거됨 ,  2023년 1월 17일 (화) 11:20
잔글
30번째 줄: 30번째 줄:  
한반도에서 각축장이 된 것은 임진강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개경과 남쪽으로는 한양이 있어 파주가 누구의 땅인가에 따라 당대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요충지가 된 것이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고 각 지역을 주, 부, 군, 현(州府郡縣)으로 지명을 고치는데 이때 지금의 파주시인 적성지역을 적성현이라 불렀다. 그 뒤 장단, 적성, 파평 지역이 개성부 관할의 기현에 속하게 된다.
 
한반도에서 각축장이 된 것은 임진강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개경과 남쪽으로는 한양이 있어 파주가 누구의 땅인가에 따라 당대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요충지가 된 것이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고 각 지역을 주, 부, 군, 현(州府郡縣)으로 지명을 고치는데 이때 지금의 파주시인 적성지역을 적성현이라 불렀다. 그 뒤 장단, 적성, 파평 지역이 개성부 관할의 기현에 속하게 된다.
   −
조선시대에 파주는 모두 5개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즉 교하, 파평, 파주, 적성, 장단지역이다. 1398년에 파평현과 서원현(파주지역)이 합해 원평군이 되었다. 1414년에는 중앙관제와 지방군현제의 대대적 개편에 따라 교하현이 원평군에 소속되고 장단현은 임단현이 되었다.
+
조선시대에 파주는 모두 5개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즉 교하, 파평, 파주, 적성, 장단지역이다. 1398년에 파평현과 서원현(파주지역)이 합해 원평군이 되었다. 1414년에는 중앙관제와 지방군현제의 대대적 개편에 따라 교하현이 원평군에 소속되고 장단현은 임단현이 되었다. 이듬해 1415년에 원평군이 원평도호부로 승격됐다.
   −
이듬해 1415년에 원평군이 원평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59년(세조 5)원평도호부가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의 내향이라는 이유로 [[파주목|파주목]]으로 승격되고 파주로 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이때 파주라는 지명이 처음 만들어졌다.
+
1459년(세조5년)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의 내향인 원평도호부를 [[파주목|파주목]]으로 승격시켰다. 이때 파주(坡州)라는 지명이 처음 만들어 졌다.
    
==파주목==
 
==파주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