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뀜

2,697 바이트 추가됨 ,  2024년 2월 21일 (수)
편집 요약 없음
6번째 줄: 6번째 줄:     
나루터는 임진강(상, 중, 하류), 조강祖江, 예성강(중, 하류)에 널리 분포한다. 나루와 포구는 여객, 물자, 세곡稅穀을 운반하는데 이용되었다. 근세까지 이용된 강나루, 임진臨津나루에서 출발한 선박은 멀리 내륙 연천, 전곡에 이르는 한탄강 종착지까지 물자(곡식, 해산물, 옹기, 특산물 등)를 운송하고 교환하였다. <ref>한국관광공사 -개성파주지역 관광개발 타당성 연구 , 2002.12월 / 47쪽</ref>
 
나루터는 임진강(상, 중, 하류), 조강祖江, 예성강(중, 하류)에 널리 분포한다. 나루와 포구는 여객, 물자, 세곡稅穀을 운반하는데 이용되었다. 근세까지 이용된 강나루, 임진臨津나루에서 출발한 선박은 멀리 내륙 연천, 전곡에 이르는 한탄강 종착지까지 물자(곡식, 해산물, 옹기, 특산물 등)를 운송하고 교환하였다. <ref>한국관광공사 -개성파주지역 관광개발 타당성 연구 , 2002.12월 / 47쪽</ref>
 +
 +
==위치 고찰==
 +
파주에 있었던 나루들은 다음과 같다. 洛河渡는 교하 북쪽 20리에 있으며, 『대동지지』에 의하면 고려시대 남쪽으로 향하는 큰 도로가 이 나루를 통과하였다고 할 정도로 교통의 요지에 속한다. 탄현면 낙하리에 있었으며, 장단군 장단면 석곶리로 통하였다. 특히 서울과 개성을 잇는 큰 길목이었기 때문에 渡丞을 두어나루를 관리하였다고 한다.
 +
 +
덕진도德津渡는『장단읍지』에 의하면 읍치 동남쪽 10리에 위치한다고 하였는데, 임진도 아래에 있었다. 임진도臨津渡는『대동지지』에 의하면 읍치 북쪽 15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파주시 파평면 율곡 3리의 성황당고개를 지나 화석정 앞에 있었다.
 +
 +
임진도는 임진강유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나루로서 관북과 관서지방으로 갈리는 분기점이기도 했다. 총융청에 소속되어 있었고, 실질적으로는 임진진에서 관리하였다. 장단진長湍津은『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읍치 동쪽 33리에 있으며, 두기진頭耆津으로도 부른다고 하였고,『대동지지』에는 고량진高浪津으로 기록하고 있다.
 +
 +
문산포汶山津은 문산읍 문산리에 있었다고 한다. 문산의 아래 마을인 하동의 서남쪽에 있었다. 신지강진神智江津은『대동지지』에 의하면 북면과 통한다고 하였다. 여의진如意津은『대동지지』에 의하면 읍치 서쪽 8리에 있으며 장단과통한다고 하였다.
 +
 +
『적성현지』에는 읍치 서쪽 20리 두기진의 하류에 있으며, 장단부가 관할한다고 하였다.梨谷津은『적성현지』에 의하면 읍치 서쪽 7리에 있으며, 장단부가 관할한다고 하였다.
 +
 +
저포진猪浦津은『대동지지』에파주읍치서쪽15리에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임진도 아래에 있다고 하였다.군내면 방목리 북쪽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서 정자리를 지나 백연리에서 임진강으로 들어가는 강가에 있었다.
 +
 +
지금의 문산읍 마정리에서 장단군으로 건너가는 나루로 독개나루라고도 불렀으며, 자유의 다리가 가설되면서 없어졌다.
 +
 +
강연포江連浦는『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단부의 서쪽 1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선을 대는 곳이라 하여 이곳에 서해의 해산물을 싣고 올라온 선박들이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ref>경기도3대하천유역 종합학술조사1 임진강, 경기도 박물관 학술총서</ref> --paki 2024년 2월 21일 (수) 13:41 (KST)
 +
 +
    
==주요 나루터==
 
==주요 나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