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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는 공릉천(恭陵川)이라고 불리던 이름을 1920년 고양·경성 측량도(조선총독부 발행)에 곡릉천(曲陵川)이라고 바꾸어 표기했다. 이 당시는 일제가 식민지 구축이 한창이던 시기로 이후부터 90여 년간 곡릉천이라고 불렸다. | | 일제는 공릉천(恭陵川)이라고 불리던 이름을 1920년 고양·경성 측량도(조선총독부 발행)에 곡릉천(曲陵川)이라고 바꾸어 표기했다. 이 당시는 일제가 식민지 구축이 한창이던 시기로 이후부터 90여 년간 곡릉천이라고 불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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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파주시는 ‘곡릉천(曲陵川)’의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다면서 당시 국토교통부에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을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심의를 통해 2009.11.12일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 고시했다. | + | 파주시는 ‘곡릉천(曲陵川)’의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다면서 당시 국토행부에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을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심의를 통해 2009.1월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 고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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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릉천 주변 지역은 하상보다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를 겪었다. 장마 피해를 입던 봉일천 지역 주민들은 홍수가 나지 않게 "해[日]와 내[川]를 받들어[奉]모신다"는 뜻으로 봉일천이라고 불렀다. | | 공릉천 주변 지역은 하상보다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를 겪었다. 장마 피해를 입던 봉일천 지역 주민들은 홍수가 나지 않게 "해[日]와 내[川]를 받들어[奉]모신다"는 뜻으로 봉일천이라고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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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천 역사 == | | ==하천 역사 == |
| − | 파주의 공릉천은 지금의 금촌, 교하, 운정, 탄현 지역을 통과 하고 삼국시대부터 교하군 관할 구역이었다. 이 구역을 담당하는 관아는 시대마다 위치가 다르지만 탄현면 갈현리에 있던 관아가 1733년 지금의 금촌으로 이전했다. | + | 파주의 공릉천은 지금의 금촌, 교하, 운정, 탄현 지역을 통과 하고 삼국시대부터 교하군 관할 구역이었다. 이 구역을 담당하는 관아는 시대마다 위치가 다르지만 탄현면 갈현리에 있던 관아가 1733년 지금의 금촌으로 이전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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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하지역과 인접한 금릉동 공릉천에는 나루터가 있었다. 대동여지도에 금성진(金城津)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다른 고지도는 금성포, 금척진, 금척포진이라고도 불렀다. | + | 교하지역과 인접한 금릉동 공릉천에는 나루터가 있었다. 대동여지도에는 금성진(金城津)으로 표기됐고 다른 고지도는 금성포, 금척진, 금척포진이라고도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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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성진 나루터는 상선이 드나 들던 곳으로 큰 창고가 있어 대창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금촌택지 부근의 교하향교만 금릉동에 남아 있다. 이 곳 나루터가 매년 홍수로 하상이 높아지자 상선배는 지금의 금릉역 부근의 쇠곳나루((金串津)으로 이전하여 정박하게 됐다. | | 금성진 나루터는 상선이 드나 들던 곳으로 큰 창고가 있어 대창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금촌택지 부근의 교하향교만 금릉동에 남아 있다. 이 곳 나루터가 매년 홍수로 하상이 높아지자 상선배는 지금의 금릉역 부근의 쇠곳나루((金串津)으로 이전하여 정박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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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쇠곳나루는 지금의 금촌1택지 북단의 은행나무 있는 곳으로 교하와 금촌을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고 상선배가 정박하자 지역일대에 큰 시장이 형성되었다. | | 쇠곳나루는 지금의 금촌1택지 북단의 은행나무 있는 곳으로 교하와 금촌을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고 상선배가 정박하자 지역일대에 큰 시장이 형성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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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조선시대부터 모를 길러 논으로 이앙하는 재배법이 확대되면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시설은 수세를 징수하고 농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되었다. | + | 조선시대부터 모를 길러 논으로 이앙하는 재배법이 확대되면서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시설은 수세를 징수하고 농지를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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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릉천 하류었던 조리, 금촌, 교하, 탄현은 평야지대로 영농시기에는 용수공급을 위해 저수지나 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중 공릉천은 조수의 영향을 받는 감초하천 구역이라 하천 여러 곳에 보가 설치됐다. | | 공릉천 하류었던 조리, 금촌, 교하, 탄현은 평야지대로 영농시기에는 용수공급을 위해 저수지나 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 중 공릉천은 조수의 영향을 받는 감초하천 구역이라 하천 여러 곳에 보가 설치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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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릉천 금촌꽃밭=== | | ===공릉천 금촌꽃밭=== |
| | [[File:410418공릉튜율립2a.jpg|300px|섬네일|공릉천 금촌 꽃밭]]2000년대 중반 [[금촌2지구 택지개발|금촌 택지개발 사업]]과 경의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공릉천 금촌구간의 이용자 급증했다. 2005년부터는 공릉천에 보리를 심어 수확기 '공릉천 보리 수확 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2021년 3천여평 둔치에 튜율립을 14만 송이를 심는 등 매년 꽃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공릉천 금촌꽃밭|자세히 보기]] | | [[File:410418공릉튜율립2a.jpg|300px|섬네일|공릉천 금촌 꽃밭]]2000년대 중반 [[금촌2지구 택지개발|금촌 택지개발 사업]]과 경의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공릉천 금촌구간의 이용자 급증했다. 2005년부터는 공릉천에 보리를 심어 수확기 '공릉천 보리 수확 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2021년 3천여평 둔치에 튜율립을 14만 송이를 심는 등 매년 꽃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공릉천 금촌꽃밭|자세히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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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공릉천 자전거길=== |
| | + | 파주삼릉에서 시작하여 송촌교까지 이르는 공릉천 [[자전거도로|자전거길]]은 총 16km로 이루어져 있다. 사계절 동안 경치가 빼어난 코스로 철새와 갈대, 연무 등을 볼수 있다.--paki 2025년 3월 19일 (수) 08:43 (KST) |
| | + | *코 스 : 장곡소공원~ 봉일천교~ 금릉역~ 교하체육공원~ 송촌교 |
| | + | *소요시간 : 16km, 1시간 (시속 20km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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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태 환경== | | ==생태 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