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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감정기 이전에는 집안마다 고유하게 가양주를 빚어 내거나 주막에서 빚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등록된 업체만 술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술의 생산을 통제하고 주세를 재정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가양주나 소규모 주조는 밀주로 불법화되고 양조업과 판매업이 분리되어 양조산업과 주류 판매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f>  
 
일제 감정기 이전에는 집안마다 고유하게 가양주를 빚어 내거나 주막에서 빚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등록된 업체만 술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술의 생산을 통제하고 주세를 재정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가양주나 소규모 주조는 밀주로 불법화되고 양조업과 판매업이 분리되어 양조산업과 주류 판매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ref>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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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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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지정===
 
국가보훈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독립유공자로 지정했다.   
 
국가보훈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독립유공자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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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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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개요====
 
1919.3.27 파주군 광탄면에서 5,000여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서 시위하고 중국 상해로 도항하여 임정 요인인 동향의 박찬익의 협조를 받으며 임정에 참여하여 요원으로 활동하고 신규식이 조직한 동제사에 가입하여 상해방면의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사실이 확인된다.
 
1919.3.27 파주군 광탄면에서 5,000여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서 시위하고 중국 상해로 도항하여 임정 요인인 동향의 박찬익의 협조를 받으며 임정에 참여하여 요원으로 활동하고 신규식이 조직한 동제사에 가입하여 상해방면의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사실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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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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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록====
 
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으로, 3·1운동 때 파주군의 주동자로 활약하였고, 그 후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경기도 파주(坡州) 사람으로, 3·1운동 때 파주군의 주동자로 활약하였고, 그 후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1919년 3월 27일 파주군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여 군 전체가 봉기할 것을 계획하고,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를 습격한 후, 그 여세를 몰아 남파주(南坡州) 경찰 주재소가 있는 봉일천리(奉日川里)까지 시위행진하여 만세를 불렀다.
 
그는 1919년 3월 27일 파주군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여 군 전체가 봉기할 것을 계획하고, 군중과 함께 면사무소를 습격한 후, 그 여세를 몰아 남파주(南坡州) 경찰 주재소가 있는 봉일천리(奉日川里)까지 시위행진하여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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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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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조서 ====
 
*유공자명:: 심상각(한자) 沈相恪  
 
*유공자명:: 심상각(한자) 沈相恪  
 
*호적명 : 이명  
 
*호적명 : 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