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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여담==
 
==여론 여담==
 
===임진왜란 화석정 소각설===
 
===임진왜란 화석정 소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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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pk-임진나루거리.jpg|400px|섬네일|임진나루 주변 위치도]]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나선 선조가 임진강에 도착했지만 일몰이 시작되고 비가 내려 임진강을 건너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율곡 선생이 생전에 제자들에게 시켜 정자 기둥에 들기름을 매일 발랐던 화석정을 블태워 그 불 빛으로 임진강을 무사히 건넜다는 일화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나선 선조가 임진강에 도착했지만 일몰이 시작되고 비가 내려 임진강을 건너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 율곡 선생이 생전에 제자들에게 시켜 정자 기둥에 들기름을 매일 발랐던 화석정을 블태워 그 불 빛으로 임진강을 무사히 건넜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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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임진강을 건너 나루에 도착했을 때에도 비가 내려 길을 찾기가 어려웠지만 남쪽 승청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무사히 동파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조가 임진강을 건너 나루에 도착했을 때에도 비가 내려 길을 찾기가 어려웠지만 남쪽 승청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무사히 동파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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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정을 소각했다는 일화는 율곡선생의 10만 양병설 예견이 임진왜란으로 현실화되자 율곡의 혜안을 존경하고 안타까워한 나머지 이와같은 일화가 구전된 것으로 본다. 우리문화신문 2013.9.12. 권효숙기자 , 율곡이이의 임진강 화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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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정을 소각했다는 일화는 율곡선생의 10만 양병설 예견이 임진왜란으로 현실화되자 율곡의 혜안을 존경하고 안타까워한 나머지 이와같은 일화가 구전된 것으로 본다. <ref>우리문화신문 2013.9.12. 권효숙기자 , 율곡이이의 임진강 화석정</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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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ajuiyagi.com/2015/04/26/화석정-소각설의-논쟁에-빠져/ 화석정 소각설 논쟁에 빠져-이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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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정시 작가 진위 여부 ===
 
===화석정시 작가 진위 여부 ===
 
노산 이은상( 1903~1982) 선생은 1934년 임진강 적벽을 유람한 뒤 쓴 ‘적벽유’에서 “‘팔세부시’는 율곡 이이 선생 작품이 아니라, 창녕지역이나 성씨와 관련된 문인인 ‘창녕후인 매연거사’라는 익명의 시인이 지었다”고 기록했다.
 
노산 이은상( 1903~1982) 선생은 1934년 임진강 적벽을 유람한 뒤 쓴 ‘적벽유’에서 “‘팔세부시’는 율곡 이이 선생 작품이 아니라, 창녕지역이나 성씨와 관련된 문인인 ‘창녕후인 매연거사’라는 익명의 시인이 지었다”고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