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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공릉천(恭陵川)이라고 불리던 이름을 1920년 고양·경성 측량도(조선총독부 발행)에 곡릉천(曲陵川)이라고 바꾸어 표기했다. 이 당시는 일제가 식민지 구축이 한창이던 시기로 이후부터 90여 년간 곡릉천이라고 불렸다.
 
일제는 공릉천(恭陵川)이라고 불리던 이름을 1920년 고양·경성 측량도(조선총독부 발행)에 곡릉천(曲陵川)이라고 바꾸어 표기했다. 이 당시는 일제가 식민지 구축이 한창이던 시기로 이후부터 90여 년간 곡릉천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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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는 ‘곡릉천(曲陵川)’의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다면서 당시 국토교통부에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을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심의를 통해 2009.11.12일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 고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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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는 ‘곡릉천(曲陵川)’의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었다면서 당시 국토행부에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을 요청했다. 국토교통부는 심의를 통해 2009.1월 ‘공릉천(恭陵川)’으로 변경 고시했다.
    
공릉천 주변 지역은 하상보다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를 겪었다. 장마 피해를 입던 봉일천 지역 주민들은 홍수가 나지 않게 "해[日]와 내[川]를 받들어[奉]모신다"는 뜻으로 봉일천이라고 불렀다.
 
공릉천 주변 지역은 하상보다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난리를 겪었다. 장마 피해를 입던 봉일천 지역 주민들은 홍수가 나지 않게 "해[日]와 내[川]를 받들어[奉]모신다"는 뜻으로 봉일천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