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목은 고려 때에는 파평현(坡平縣)과 서원현(瑞原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조선은 1398년(태조 7)에 파평현과 서원현을 합쳐원평군으로 변경했다. 1460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목으로 승격되면서 파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1504년(연산군 10) 잠시 고을이 폐지되었지만 반정(反正)으로 중종이 즉위한 해에 복구되었다.
파주목사 위치
파주목은 경기 서부의 행정 및 교통의 중심지로서 조선시대 지방행정처로, 왕의 능행 시 행궁의 역할을 하던 장소이다. 조선시대한양과 의주를 잇는 의주로에 인접한 파주목 관아는 경기 북부 지역의 중요 장소로서 왕이 황해북도 지역에 위치한 제릉과 후릉,파주 영릉과 장릉을 능행할 때 머물던 장소이다.
파주목 관아는 1900년대 이전까지 유지되어 오다 일제강점기 이후 관아 건물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며 행궁으로서의 기능이 훼손된 것으로 보이며, 한국 전쟁에 의해 대부분의 건축물이 사라지며 현재는 파주목관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 파주목 관아의 위치 추정과 공간구성 연구, 백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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