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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바이트 제거됨 ,  2022년 6월 25일 (토)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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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 다율리로 문중 묘를 이장하고 2000년 홍랑의 시가 발견되자 홍랑의 묘지에 문학과 관련된 학생이나 일반인들의 방문이 많아 졌다. 2005년 교하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종중 소유의 부지 1만평중 절반 가량이 수용됐다. 이 당시 문중에서는 나머지 땅도 언제 개발될지 모르다며 오산으로 이장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교하 다율리로 문중 묘를 이장하고 2000년 홍랑의 시가 발견되자 홍랑의 묘지에 문학과 관련된 학생이나 일반인들의 방문이 많아 졌다. 2005년 교하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종중 소유의 부지 1만평중 절반 가량이 수용됐다. 이 당시 문중에서는 나머지 땅도 언제 개발될지 모르다며 오산으로 이장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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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태리 캠프에드워드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하자 최씨 문중은 수용된 토지의 일부라도 매수하기를 희망했다. 종중에서는 원래의 선산에 조선시대 유명한 문인들의 묘소를 복원할 수 있도록  전국 각지에 산재한 문중의 서명을 받아 탄원서를 제출했다. 국방부는 해당 토지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매수한 토지이기 때문에 원 소유자에게 수의 매각이 불가하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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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태리 캠프에드워드에 주둔하던 미군이 철수하자 최씨 문중은 수용됐던 토지 매수를 추진했다. 종중은 원래의 선산에 조선시대 유명한 문인들의 묘소를 복원할 수 있도록  전국 각지에 산재한 문중의 서명을 받아 탄원서를 제출했다. 국방부는 해당 토지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매수한 토지이기 때문에 원 소유자에게 수의 매각이 불가하다고 답변했다.
    
순탄하지 않던 다율리 최씨 문중 묘지는 2018년 GTX A노선의  기지창으로 결정되면서 다시 수용지역으로 편입됐다. 종중에서는 문화유적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2022년  적성면 지역으로 이장을 결정했다.
 
순탄하지 않던 다율리 최씨 문중 묘지는 2018년 GTX A노선의  기지창으로 결정되면서 다시 수용지역으로 편입됐다. 종중에서는 문화유적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2022년  적성면 지역으로 이장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