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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지역과 인접한 금릉동 공릉천에는 나루터가 있었다. 대동여지도에 금성진(金城津)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다른 고지도는 금성포, 금척진, 금척포진이라고도 불렀다.
 
교하지역과 인접한 금릉동 공릉천에는 나루터가 있었다. 대동여지도에 금성진(金城津)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다른 고지도는 금성포, 금척진, 금척포진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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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진 나루터는 상선이 드나 들던 곳으로 큰 창고가 있어 대창골이라는 자연부락이 있었고 현재는 교하향교만 금릉동에 남아 있다. 이 곳 나루터가 매년 홍수로 하상이 높아지자 상선배는 지금의 금릉역 부근의 쇠곳나루((金串津)으로 이전하여 정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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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진 나루터는 상선이 드나 들던 곳으로 큰 창고가 있어 대창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금촌택지 부근의 교하향교만 금릉동에 남아 있다. 이 곳 나루터가 매년 홍수로 하상이 높아지자 상선배는 지금의 금릉역 부근의 쇠곳나루((金串津)으로 이전하여 정박하게 됐다.  
    
쇠곳나루는 지금의 금촌1택지 북단의 은행나무 있는 곳으로 교하와 금촌을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고 상선배가 정박하자 지역일대에 큰 시장이 형성되었다.
 
쇠곳나루는 지금의 금촌1택지 북단의 은행나무 있는 곳으로 교하와 금촌을 오가는 나루터가 있었고 상선배가 정박하자 지역일대에 큰 시장이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