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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보광사 동종’은 설봉 천보(雪峯 天寶)의 마지막 작품으로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의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예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조선 후기 동종 제작기법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다. 또한 원 봉안처를 떠나 옮겨지는 일이 많은 다른 동종들과 달리 최초 봉안처에서 온전히 그 기능을 수행하며 잘 보전되어 온 점에서 그 역사성도 인정될 수 있어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다.<ref>파주시 보도자료 2023.7.4. 문화예술과</ref>
 
‘파주 보광사 동종’은 설봉 천보(雪峯 天寶)의 마지막 작품으로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의 과도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예사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조선 후기 동종 제작기법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다. 또한 원 봉안처를 떠나 옮겨지는 일이 많은 다른 동종들과 달리 최초 봉안처에서 온전히 그 기능을 수행하며 잘 보전되어 온 점에서 그 역사성도 인정될 수 있어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다.<ref>파주시 보도자료 2023.7.4. 문화예술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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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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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 제작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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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는 2023.7.4일 보도자료를 통해 보광사 범종의 보물지정을 예고하면서 범종은 승려 장인인 천보(天寶)가 청동 300근을 들여 1634년(인조 12) 7월에 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파주시 홈페이지 역사관광 안내에서는 설봉자가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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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볼교조계종 보광사는 홈페이지에 '보광사 동종'은  천보와 함께 상륜(尙倫), 경립(敬立) 등에 의해 조성됐고 미지산(彌智山) 설봉자(雪峯子)가 희령(喜岺), 경립(敬立)과 함께 제작했다고 게시했다.<ref>보광사 홈페이지 숭정칠년명동종(崇禎七年銘銅鐘), http://www.bokwangsa.net/bogwang/cultura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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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에 대한 논란의 발단은 그동안 천보는 범종 제작을 총괄 관리하는 책임자이고 설봉자는  '보광사 동종'을 직접 제작한 인물로 본 것이다. 문화재청도 홈페이지에 설봉자를  당시 승려 장인 집단을 이끌던 천보스님으로 추정된다고만 했다.<ref>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s_kdcd=&s_ctcd=31&ccbaKdcd=21&ccbaAsno=01580000&ccbaCtcd=31&ccbaCpno=2113101580000&ccbaLcto=37&culPageNo=2&header=region&pageNo=1_1_3_0&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RegionList.do&assetnamel=</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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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자가 천보라고 확정된 것은 2023.6월  그동안 경기도 문화재로 관리되었던 ' 파주 보광사 숭정칠년명 동종'을  '파주 보광사 동종'으로 이름을 바꾸고 국가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동일 인물로 판단했다. '파주 보광사 동종'을 보물로 지정하는 심의에서 문화재청은 제작자를 '설봉 천봉' 또는 '설봉자 천봉'으로 표현했다.--paki 2023년 7월 6일 (목) 09:10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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