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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쌀과 바꾸는 황복=== | | ===보리쌀과 바꾸는 황복=== |
− |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에 걸쳐 황복어가 바다에서 민물로 와서 산란하는 시기이다. 이때는 황복어를 포획하기 위한 어부들의 손길이 다시 바빠지는 시기이다. | + |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에 걸쳐 황복어가 바다에서 민물로 와서 산란하는 시기이다. 이때는 황복어를 포획하기 위한 어부들의 손길이 다시 바빠진다. |
− | 한국전쟁전에는 황복어의 포획량이 상당하여 임진강의 어부들 뿐만 아니라 강화도의 어부들까지도 강으로 와서 황복어를 잡아갔다. 황복어가 나는 철에 어부들이 소쿠리에 황복어를 담아 지게에 지고 팔러 다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 + | |
| + | 한국전쟁전에는 황복어의 포획량이 상당하여 임진강의 어부들 뿐만 아니라 강화도의 어부들까지도 강으로 와서 황복어를 잡아갔다. 황복어가 나는 철에는 어부들이 소쿠리에 황복어를 담아 지게에 지고 팔러 다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주로 황복어를 팔고 대신 보리쌀을 얻어 생계를 연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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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로 황복어를 팔고 대신 보리쌀을 얻어 생계를 연명하였다. 황복어를 잡는 철에 하류에서 까나리도 잡을 수 있었다. 까나리는 젓갈을 담거나 끓여서 먹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잡지 못하였다. 중선배들은 6∼9월중에 서해에서 새우잡이를 하여 문산과 고랑포로 싣고와 팔았다.<ref>경기도3대하천유역 종합학술조사, 경기박물관</ref>--2024년 2월 29일 (목) 11:44 (KST)
| + | 황복어를 잡는 철에 하류에서 까나리도 잡을 수 있었다. 까나리는 젓갈을 담거나 끓여서 먹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잡지 못하였다. 중선배들은 6∼9월중에 서해에서 새우잡이를 하여 문산과 고랑포로 싣고와 팔았다.<ref>경기도3대하천유역 종합학술조사, 경기박물관</ref>--2024년 2월 29일 (목) 11:44 (K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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