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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정전 <ref> 정전이라는 용어는 1951년 당시부터 사용됐다. </ref>  회담은 1951.7.10일 개성 송악산 기슭의  래봉장 <ref>개성시 고려동 396번지에 위치하며 조선시대부터 요정으로 이용됐다  </ref> 이라는 요정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 지역은 공산군이 장악한 지역으로 공산군 측은 승전이라는 장소로 이용했다.
 
6.25전쟁 정전 <ref> 정전이라는 용어는 1951년 당시부터 사용됐다. </ref>  회담은 1951.7.10일 개성 송악산 기슭의  래봉장 <ref>개성시 고려동 396번지에 위치하며 조선시대부터 요정으로 이용됐다  </ref> 이라는 요정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 지역은 공산군이 장악한 지역으로 공산군 측은 승전이라는 장소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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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군 측은 래봉장이 남향의 건물이라는 점을 이용해 북쪽에는 공산군 측이 자리하고 남쪽 입구에는 유엔군 측을 배치했다. 회담장 내부의 의자도 유엔군 측이 공산측보다 낮은 것으로 하고  회담장으로 이동할때 차량에  백기를 게양하도록 하는 등 대외적으로 유엔군 대표단을 항복사절단으로 보이게 하려는 전술을 폈다. <ref> 정전회담장 개성의 來鳳莊 1651.7.21 동아일보/  SPACE,판문점 시공의 정치학 김재한 한림대교수,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g3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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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군 측은 래봉장이 남향의 건물이라는 점을 이용해 북쪽에는 공산군 측이 자리하고 남쪽 입구에는 유엔군 측을 배치했다. 회담장 내부의 의자도 유엔군 측이 공산측보다 낮은 것으로 하고  회담장으로 이동하는 차량에  백기를 달아 운행 하는 등 대외적으로 유엔군 대표단을 항복사절단으로 보이게 하려는 전술을 폈다. <ref> 정전회담장 개성의 來鳳莊 1651.7.21 동아일보/  SPACE,판문점 시공의 정치학 김재한 한림대교수,https://vmspace.com/report/report_view.html?base_seq=MTg3 </ref>  
    
유엔군 대표단은 정전회담 장소가 공산측 지역에 위치하고 개성 주민과 마주치는 등 중립지대 규정을 위반하는 사건이 다수 발생하자 회담장소 이전을 제안했다. 공산군 측은 개성 시가지를 경유하지 않는  당시 장단군 진서면 선적리와 개풍군 봉동면 발송리 사이의 널문리를 제안하면서 1차 이전하게 됐다.
 
유엔군 대표단은 정전회담 장소가 공산측 지역에 위치하고 개성 주민과 마주치는 등 중립지대 규정을 위반하는 사건이 다수 발생하자 회담장소 이전을 제안했다. 공산군 측은 개성 시가지를 경유하지 않는  당시 장단군 진서면 선적리와 개풍군 봉동면 발송리 사이의 널문리를 제안하면서 1차 이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