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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시대=== | | ===조선 시대=== |
| ====18세기~==== | | ====18세기~==== |
− | 파주 지역은 18세기 한강과 임진강변에 발달한 퇴적지를 농경지화하기 위해 간척과 개간이 이루어지면서 인구 유입의 촉진 원인이 됐다. | + | 파주 지역은 한강과 임진강변에 발달한 퇴적지를 간척과 개간으로 농경지를 만들면서 인구 유입이 급격히 증가되어 18세기 중반에 파주 인구는 38천여명으로 19세기 중후반에는 45천여명으로 늘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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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특성으로 인해 18세기 중반에 파주 인구는 38천여명으로 19세기 중후반에는 45천여명으로 증가됐다.
| + | 당시 인구 증가가 많았던 적성은 18세기 중반 4900여 명이던 것이 19세기 후반 8420여 명으로 증가하고 교하는 18세기 말 8천여 명이던 인구가 19세기 후 반 1만 493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교하의 경우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이고 경기만으로부터 밀물이 운반·퇴적하여 형성된 충적지로 유입 인구가 더 많았다. <ref>파주시지 3권 214쪽, 파주의 인구변화</ref> --paki 2024년 7월 19일 (금) 19:55 (K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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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시 인구 증가가 많았던 적성과 교하를 보면 적성의 경우 18세기 중반 4900여 명이던 것이 19세기 후반 8420여 명 으로 증가했다. 교하의 경우도 18세기 말 8천여 명이던 인구가 19세기 후 반 1만 493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교하의 경우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이고 경기만으로부터 밀물이 운반·퇴적하여 형성된 충적지로 평야 를 이루고 있어 유입 인구가 많았다. <ref>파주시지 3권 214쪽, 파주의 인구변화</ref> --paki 2024년 7월 19일 (금) 19:55 (KS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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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구 및 인구 | | *가구 및 인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