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창 [단편소설] – 신수현
제목 : 각각의 창
준호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식탁 위에 놓인 서류 봉투와 그 옆에 나란히 놓인 도장을 번갈아 한참 바라보았다. 거실의 정적을 깬 것은 채원의 말이었다.
“이혼해요, 우리.”
채원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마치 내일 비가 올 것 같으니 우산을 챙기라는 말처럼 덤덤했다. 준호는 이혼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 되풀이했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지금 이 거실, 자신의 인생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실감 나지 않았다.
“장난이지?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채원은 대답 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침묵이 오히려 준호의 사방을 무겁게 짓눌러왔다. 그는 도장을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래? 우리가 무슨 문제가 있다고….”
준호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묻어났다. 그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따지는 일에 에너지를 쓰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삶은 단순해야 했고, 제도는 유지되어야 했다. 채원은 대답 대신 준호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준호는 묘한 주눅을 느꼈다. 결혼 생활 내내 준호가 채원을 무시하며 보냈던 ‘사람이 왜 그리 멍청해’라고 말하는 듯한 그 불쾌한 눈빛이 오히려 거꾸로 자신에게 날아와 박히는 기분이었다. 채원은 식탁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거실 한구석에 놓인 화분의 잎사귀들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올해 쉰다섯이 된 준호는 늘 평범하고 튀지 않는 곡선을 그리며 살아왔다. 학창 시절에도 중간만 가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믿었기에 성적조차 늘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얼마 전 과장으로 승진하며 남부러울 것 없는 평탄한 노후까지 보장받았다고 믿었던 그에게 아내가 건넨 말은 정상적 궤도에서 삶을 통째로 이탈시키는 시한폭탄과 같았다. 그것도 결혼 25주년 기념일인 오늘, 이혼 통보를 받게 될 줄은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
지방대를 나와 서류 전형에서 숱하게 낙방한 끝에, 학벌을 보지 않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 지 2년 만인 스물여덟의 나이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준호는 동사무소 주민등록 창구에 첫 발령을 받았다. 막내의 임무 중 하나는 매일 오후, 전날 마감해 둔 서류 발급 수수료를 은행에 고지서로 납부하는 일이었다.
그의 귀찮은 걸음이 즐거움으로 바뀐 것은 순전히 은행 창구직원인 송채원 때문이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에 조용하고 얌전한 미소를 짓던 스물여섯의 채원. 준호는 남몰래 그녀를 마음에 품었다. 반년이 지났을 무렵, 팀에 새로운 막내가 들어오면서 준호는 더 이상 은행에 갈 일이 없어졌다. 그로부터 다시 6개월의 시간이 흘러 준호는 구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새로운 업무와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팔린 그에게 송채원이라는 존재는 잠시 기억 저편으로 밀려났다.
자리를 옮기고 몇 개월이 지나 스물아홉의 가을, 준호는 엄마로부터 사진 한 장을 건네받았다. 사진을 마주한 순간 준호는 강렬한 전율을 느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송채원이었다. 차분한 손길로 현금과 고지서를 건네받던 그녀의 미소는 메마른 준호의 일상에 유일한 빛이었다. 짙거나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자꾸만 눈이 가던 담백한 이목구비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던 은은한 미소, 무엇보다 창구 너머로도 느껴지던 자그마하고 아담한 체구는 준호가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해 둔 이상형의 모습이었다.
이모의 절친이 마침 그 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던 덕에 그해 가을 두 사람은 소개팅 자리에서 마주 앉게 되었다. 조신하게 앉아 있는 자태마저 눈부셨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최고지. 또 뭐가 중요하겠어.’ 준호는 마음속으로 그녀와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성급한 예감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채원이 가진 정적인 매력만큼은 쉽게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채원의 오랜 취미는 시 쓰기였다. 대학 시절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재능도 뛰어났다. 시와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담임선생님이 생일 선물로 준 책 속 책갈피에 적혀 있던 에밀리 디킨슨의 시 구절 “내가 만약 누군가의 애타는 가슴 하나를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이 맑고 다정한 문장을 마주한 그때부터 시는 채원의 삶에 깊이 자리 잡았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졌기에 밥을 먹듯 시를 읽어야 한다고. 그래야 영혼이 굶주리지 않는다고 채원은 늘 믿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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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직접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삶의 거대한 슬픔이었다. 사랑하던 동생 채윤의 죽음이었다. 십여 년 전 늦은 저녁, 신호등을 건너던 동생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서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 무참한 사고 이후 채원은 비로소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채윤을 향한 애도라기보다는 스스로가 미치지 않고 살아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시라는 작은 창을 통해 간신히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고 있었다.
“당신이 보냈어? 그 밤중에 애를 왜…?”
채윤을 극진히 아꼈던 아버지 송찬복은 정신을 놓아버렸고, 비극의 화살은 어머니 최미자에게 향했다. 용납할 수 없는 재앙이 닥쳤을 때 어떻게든 책임자를 지정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나약한 심리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미친 듯이 탓하며 싸웠다. 그날 저녁 채윤이 왜 밖으로 나갔는지, 그 진짜 이유를 두 사람은 끝내 알지 못한 채 서로를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채원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학기가 저물어갈 무렵, 두 자매가 나란히 상장을 받아온 날이 있었다. 채원은 전교 석차가 찍힌 우등상을, 동생 채윤은 교내 사생대회에서 받은 장려상 상장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채윤의 상장을 액자에 정성스레 끼워 거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온 동네에 자랑을 늘어놓았다. 반면 채원이 수줍게 내민 우등상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거실 탁자 한구석에 밀어두었다. 며칠 뒤 채원은 신문지 더미와 함께 분리수거함에 담겨 있는 자신의 우등상을 발견하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제 노력의 가치가 쓰레기처럼 버려진 것을 보며 아버지의 세상에는 오직 채윤이만 존재할 뿐 자신의 자리는 단 한 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는 결국 별거 끝에 이혼했다. 그렇게 채원은 어머니와 단둘이 남겨졌다.
소개팅으로 만남이 이루어진 두 사람의 결혼은 속전속결로 흘러갔다. 공기업에 근무하던 준호의 아버지가 정년퇴직 하기 전 결혼식을 올려 축의금을 회수하길 바랐던 집안의 압박과 친정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안온한 울타리를 원했던 채원의 절박함이 맞물린 결과였다. 아름다운 봄꽃이 피어나던 새천년 3월, 두 사람은 마침내 부부가 되었다.
*
결혼 생활은 준호의 바람대로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준호는 자신이 꿈꾸던 보통의 행복을 비로소 완성했다고 믿었다. 늘 그의 뜻을 잔잔히 따라주는 채원은 그가 바라던 완벽한 아내의 모습 그대로였다. 퇴근 후 주방에서 부랴부랴 상을 차리는 채원의 손길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묻어났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냐는 다정한 물음 끝에 어느새 장을 봐와 식탁을 빈틈없이 채워내는 아내를 보며 준호는 매일 밤 달콤한 만족감에 젖어들었다. 우주의 기운이 온통 자신을 축복해 주는 것만 같은 날들이었다. 그 완벽한 충만함 속에서 준호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 남자였다.
거실 소파는 두 사람을 위한 가장 안락하고 완벽한 아지트였다. 굳이 마주 보고 앉아 뜨거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좋았다. 각자 한쪽 귀에 이어폰을 나눠 끼고 같은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았다. 두 사람의 발끝은 슬며시 겹쳐져 있었고, 한 사람의 무릎 위에 다른 사람의 다리가 툭 얹어져 있기도 했다.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함이 느껴지는 순간,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좋았다. 문득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치면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그것이야말로 준호가 믿어 의심치 않던 신혼부부의 거실을 채우는 가장 평범하고 완벽한 공기였다.
영원할 것 같던 준호의 삶의 균형은 아들 선우가 태어나면서부터 눈에 보이지 않게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외동아들로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 준호는 지독하게 눈치가 없었다. 퇴근 후 가사와 육아, 은행 업무까지 병행하느라 채원의 몸이 축나 앓아누운 날이면 준호는 주방에 들어가는 대신 득달같이 영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색시 아파. 와서 살림 좀 해줘.”
시어머니 황영숙이 들이닥친 집에서 며느리인 채원이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는가. 영숙은 한술 더 떠 살림을 합치자는 말을 꺼냈다. “그러면 선우도 남의 손에 안 맡겨도 되고, 애 정서에도 얼마나 안정감이 있겠니?” 준호가 반색을 하며 맞장구를 치자 채원의 안색은 차갑게 굳어졌다.
어머니가 본가로 돌아가고 준호가 소파에 앉자 채원은 차 두 잔을 타와 준호 옆에 바르게 앉아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준호씨, 어머님 생각하면 난 차마 그렇게 못 해. 선우 이제 막 뛰어놀 나이라 어머님 관절 다 상하셔. 난 내 아이만큼은 내 손으로 키우고 싶어.”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우리 엄마 보기보다 튼튼해.”
준호의 해맑은 대답에 채원은 순간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화를 내면 도리어 본질을 흐릴 게 뻔했다. 채원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 하나만 할게. 자기가 주말 내내 집에서 속옷 차림으로 굴러다니는 것도 끝이야. 당장 눈앞에 편한 것만 보지 말고 자기가 포기해야 할 자유가 뭔지 생각해 봐.”
그제야 준호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역시 주말의 자유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불편해질 일들이 한두 개가 아닐 것 같았다. 준호는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아, 귀찮게 진짜…. 엄마한테는 또 뭐라고 말해? 자기가 좀 중간에서 잘 얘기해 주면 안 돼?”
자신이 먼저 합가를 덥석 물어놓고는 이제 와 수습하기 귀찮아지자 슬며시 채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투정이었다. 채원은 대답 없이 그저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준호에게 결혼이란 결혼식장에서의 선서와 동시에 아내라는 존재를 완전히 소유하는 제도적 계약이었다. 주례사 앞에서 턱시도를 입고 서약 내용을 들을 때만 해도 그것을 지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자신했다. 결혼과 동시에 채원은 완벽한 그의 여자가 되었으니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아무런 걸림돌이 없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준호의 기대와 확신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채원은 침대 위에서조차 힘들었다. 준호는 여자 몸을 잘 몰랐다. 그래서인지 배려가 없었다. 여자의 몸이 열리기까지 필요한 다정한 손길이나 온기는 생략되기 일쑤였고 늘 준비되지 않은 몸으로 그의 이기적인 속도를 받아내야 했다. 콘돔을 껄끄러워하며 쓰기 싫어하는 표정을 볼 때면 채원은 속에서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치밀었다. 결국 채원은 몸속에 피임기구를 심었다.
어느 날 저녁 설거지를 하던 채원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았을 때 채원은 비명을 지르며 그를 밀쳐냈다. 준호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거부당한 남성의 자존심은 고집과 통제욕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육체적 관계를 상실한 결혼 생활은 절망적이었고 잠자리 기회를 잡기 위해 눈치를 보는 것조차 너무나 소모적인 일이었다.
육체적 외로움과 절망은 채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채원에게 은행 동료인 은정은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아홉 살이나 어린 은정은 매사에 솔직하고 용감했다. 작년 가을 한 진상 고객이 서류가 미비해 대출이 어렵겠다는 채원의 말에 화를 참지 못해 그녀의 얼굴에 서류뭉치를 던지며 고함을 질렀다. 바로 옆 창구의 은정이 벌떡 일어나 그 고객의 손목을 낚아채며 지금 당장 경찰 부르고 폭행죄로 고발하겠다고 용감하게 맞서 채원을 구해준 일이 있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급격히 친해졌다. 채원은 은정의 그런 당찬 모습을 내심 동경하고 있었다.
야근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퇴근하던 길에 두 사람은 은행 근처 카페에 마주 앉아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정은 결혼 4년 차였지만 유산을 겪은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언니, 우리는 둘 다 관계를 좋아하는 편이라 자주 하는데도 왜 애가 안 들어설까 몰라.”
“부럽다. 어쩜 그게 즐거울 수가 있니? 난 아이 낳고 불감증에 걸렸나 봐.”
준호와의 잠자리에 늘 교감이랄 게 없었던 것을 떠올렸다. 신혼 시절, 쾌감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뱉었을 때 준호는 창피하다는 듯 손으로 채원의 입을 턱 막았다. 그 순간 채원의 안에서 피어오르던 작고 순수한 불꽃은 차갑게 사그라들었다. 그런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두꺼운 벽을 만들었고 결국 채원의 몸과 마음을 단단히 닫아걸게 만들었다.
채원은 괜히 찻잔만 만지작거리며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어디 말 통하는 남자 없나? 남편하고는 도무지 대화가 안 돼서….”
채원이 씁쓸하게 웃으며 던진 말에 은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고, 순진한 우리 언니 좀 보소. 언니, 남자들은 원래 대화보다 몸이 먼저 통하는 걸 원해. 내가 좋은 사람 소개해 주고 싶어도 다들 눈이 겉껍데기에만 가 있어서 안 돼.”
대화보다 몸이 먼저 통하길 원한다는 은정의 말에 남자와 여자는 이토록 다르단 말인가?! 채원의 가슴에 씁쓸한 얼룩을 남겼다. 그러고 보면 준호만 유별나게 모나고 비정상적인 인간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저 남자란 본래 그렇게 생겨먹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를 향했던 뾰족한 원망은 허탈한 체념으로 변해갔다.
*
준호의 가장 큰 불만은 채원이 선우를 낳자마자 자신을 철저히 등한시한다는 점이었다. 부부의 안방 침대는 선우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 기능을 상실했다. 준호의 베개는 자연스럽게 거실 바닥으로 밀려났다. 준호는 밤마다 차가운 거실 바닥에 홀로 누워 지독한 외로움을 견뎌야 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준호는 살짝 기울어진 채원의 하얀 목덜미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밀려든 자극에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이 가빠졌다. 오늘은 어떻게든 아내의 닫힌 빗장을 열어보리라 다짐하며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 손길이 닿자마자 채원은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준호의 품을 뿌리쳤다. 순식간에 품을 빠져나간 채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거칠게 닫힌 문 앞에서 준호는 순간 짜증이 치밀었으나 이내 문틈을 타고 흘러나오는 소리에 굳어버렸다. 그것은 거부의 몸짓보다 더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아내의 처절하고도 억눌린 흐느낌이었다. 단단히 잠긴 문 너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준호는 온몸의 핏기가 가라앉는 듯한 지독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문을 두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모든 의욕이 꺾인 상태로 멍하니 침대로 돌아와 누워버렸다.

그 다음 날 저녁, 채원은 봉투 하나를 준호에게 건넸다. 밖에서 알아서 해결하고 오라는 뜻이었다. 준호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분노를 느꼈다. 이딴 봉투 하나로 자신을 밀어내며 남편을 비참하게 만드는 채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기도 싫었다. 사회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하고 품으라고 요구하는데, 정작 그 한 여자가 자신을 거부할 때 남자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결국 아내를 향한 원망의 골만 깊어졌다.
채원은 세상에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산다는 건 시련의 연속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견디거나 싸우는 것뿐이었다. 채원은 늘 견디는 편을 택해왔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참는 것도 괜찮다고 믿었다. 선우의 탄생과 동시에 완벽한 울타리를 이루었다고 믿은 순간 역설적으로 거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목숨보다 소중한 지키고 싶은 존재가 생겼다는 것은 채원의 신경을 한층 더 날카롭고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불우했던 유년 시절 부모에게 끝내 받지 못했던 온전한 사랑을 제 자식에게만큼은 통째로 쥐여주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결혼 15년 차가 되던 해, 준호의 부모는 부부 동반 여행 중 터널 화재 사고로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준호는 넋을 잃고 눈물을 쏟아냈다. 사람들 앞에서는 침착한 척했지만, 밤이 되어 홀로 남으면 준호는 자신이 세상에 완전히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낯선 공포에 사로잡히곤 했다. 부모라는 울타리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지.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 두려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그는 그저 아내의 곁에 조용히 붙어 있는 것으로 버텼다.
채원은 그런 준호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열일곱 살의 저녁, 신호등에서 붉은 피를 흘리며 멈춰 서버린 동생 채윤의 기억이 채원의 마른 손을 움직이게 했다. 채원은 준호의 몸에 대한 거부감을 억지로 삼키며 그의 굳은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것은 부부로서 나눈 가장 밀도 높은 교감이었지만, 슬픔의 유통기한이 끝나자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관계는 더 빠른 속도로 녹슬어 가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준호는 곱게 자란 외동아들의 티를 노골적으로 냈다. 식탁에 생선구이가 올라오면 채원이 가시를 발라주기를 기다렸다. 준호에게 삶은 여전히 단순한 제도였고, 남편이란 대접받아야 마땅한 존재였다. 복잡하게 생각할 에너지가 부족했던 그는 대화 대신 자신만의 가치관을 채원에게 주입하려 들었다.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줄기차게 지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준호의 목소리는 채원에게 소음 공해와 같았다.
살림을 분담하자는 채원의 애원에 온갖 기상천외하고 핑계로 응수했다. 생전 처음 싱크대 앞에 섰던 날, 다리를 긁어대며 주방에 서면 희한하게 다리가 간질거려 죽겠다며 수세미를 내던지듯 내려놓았다. 먼지가 굴러다녀도 청소기 한번 잡지 않는 그에게 채원이 한소리라도 할라치면 일주일에 한 번만 돌리면 되지 왜 이렇게 유난이냐며 오히려 채원을 별난 사람 취급했다. 물때가 낀 화장실을 두고는 화학약품 알레르기 때문에 숨이 안 쉬어진다며 슬그머니 안방으로 도망치기 일쑤였다. 채원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갑게 식어 내리는 환멸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서운함이 아니라 한 인간을 향한 신뢰와 애정이 통째로 마모되는 과정이었다.
이혼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직감하면서도 채원은 또다시 인내를 택했다. 그것은 동생 채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깊은 죄책감이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이었다.
*
그렇게 간신히 유지되던 경계선은 결국 사소한 영수증 한 장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출근길 자동차 엔진에서 괴상한 마찰음이 나는 것을 느낀 채원은 퇴근길에 시간을 내어 카센터에 차를 맡겼고, 부품을 교체한 뒤 영수증을 받았다. 주말 아침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그 영수증을 본 준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굳어졌다.
“당신 진짜 머저리야? 여자라고 아주 대놓고 바가지를 씌웠네. 당신은 이래서 안 돼. 매사에 야무진 구석이 없어. 시나 쓸 줄 알지.”
채원은 싱크대 앞에 선 채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준호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아와 박혔다. 수십 년간 그녀의 영혼을 위축시켰던 그 특유의 멸시 어린 시선이었다. 그는 오직 숫자로 표시된 금액과 자신의 통제권에서 벗어난 상황에만 분노하고 있었다. 채원은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마른 가슴을 쾅쾅 내리쳤다.
채원은 고무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준호는 승리감에 도취한 듯 혀를 차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채원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끊어졌다. 이 남자는 평생 자신을 알지 못할 것이며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서늘한 확신.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깨달음. 마침내 채원은 마음속으로 서늘한 전쟁을 선포했다.
*
이혼 서류를 앞에 둔 준호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억울한 표정으로 채원을 쏘아보고 있었다.
“당신 정말 독하다. 고작 카센터 영수증 일이랑 내가 살림 좀 안 도와준 걸로 이십오 년 결혼 생활을 엎겠다는 거야? 내가 바람을 피웠어? 도박을 했어? 남들 다 이렇게 살아!”
“차라리 죽을죄라도 지었으면 용서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에게 이십오 년 동안 자잘하게 베인 상처들은 치유될 수 없어요. 누가 이렇게 살아요? 한 사람만 대봐요.”
채원이 처음으로 준호의 말을 날카롭게 가로막았다.
“당신은 평생 내가 왜 시를 썼는지, 왜 침대 위에서 얼어붙었는지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어. 당신에겐 그저 달력에 적힌 날짜와 횟수만 중요했을 뿐이야.”
준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채원은 책상 서랍 깊은 곳에서 빛바랜 공책 한 권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첫 장에 채원의 자필로 쓴 시가 나왔다. 제목은 <흰 비닐봉지에는 달빛만 고이고>였다. 준호는 무심하게 시를 읽어 내려갔다.
그날의 저녁은 너무 빨리 저물었고
내가 건넨 작은 부탁은
길고 긴 그림자가 되어 돌아왔다.
이제 내 손에는
웅크린 죄책감과 차가운 눈물만 고인다.
보내지 말았어야 할 그 길목에서
시간은 영원히 멈춰 서서 나를 벌한다.
네가 당도한 그곳은
부디 저녁노을조차 다정하고
거리에 차가운 불빛 하나 없는
온통 포근한 봄날의 낮이기를.
미안하다는 말조차 무거워
바람의 결에 실어 보내니
그곳에서는 아무런 무게도 없이
가장 자유롭게 가장 눈부시게 피어나라.
내 몫의 어둠은 내가 가질 테니
너는 오직 빛나는 하늘만 거닐어라.
준호는 노트에서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들어 채원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는 둔한 눈빛이었다.
“내가 왜 이십오 년을 버텼는지 알아? 내 부모의 이혼이 나에게 줬던 그 끔찍한 아픔을 내 아들 선우에게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였어. 하지만 이제 선우는 스물네 살의 성인이야. 난 이제 내 의무를 다했어. 준호 씨.”
채원의 눈에서 마침내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준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아내를 소유했다고 믿었지만 정작 그녀의 영혼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았다. 그녀는 준호의 멍한 얼굴 위로, 이십여 년 전 결혼식을 단 하루 앞두던 밤의 기억이 겹쳐 흘렀다.
그날 밤, 채원은 마침내 목구멍까지 차올라 차마 뱉지 못했던 비밀을 친정엄마 미자 앞에 꺼내놓았었다. 새로운 삶의 궤도로 진입하기 전 영혼을 갉아먹던 해묵은 진실을 고백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허락된 마지막 정화라 믿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털어놓은 채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은 잔인하도록 선명했다. 이야기를 듣는 미자의 주름진 눈가에 이내 눈물이 고여 흘러내렸다. 미자는 채원의 어깨를 바투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채원아, 이 미련한 것아…. 왜 그걸 이제껏 혼자 안고 살았어. 네 잘못이 아니야. 다 채윤이의 운명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품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채원은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젠 죄책감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 제 삶을 자유롭고 가볍게 살아가라는 엄마의 다독임에 평생 참아왔던 울음을 한꺼번에 터뜨렸던 밤. 두 모녀는 가슴속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다 녹아내릴 때까지 서로를 안은 채 소리 높여 울고 또 울었었다.
그날 밤 엄마의 품에서 흘렸던 눈물이 영혼의 정화였다면, 지금 준호 앞에서 흐르는 눈물은 오랜 구속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었다. 채원은 눈물을 닦아내지도 않은 채, 한결 가벼워진 시선으로 준호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 동생 채윤이… 내가 과자 심부름만 안 시켰어도 안 죽었어.”
채원의 입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온 고백에 준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심부름을 보낸 줄 알고 평생을 원망하며 싸웠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어. 나는 아빠가 나를 증오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진실을 말하지 못했지. 결국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나는 그 상처 속에서 평생을 죄인으로 살았어.”
채원은 도장을 찍은 서류를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은 내일 이삿짐센터에서 와서 가져갈 거야. 그리고 선우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해.”
선우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 다니느라 학교 근처 원룸에서 생활하는 아들은 채원이 가끔 내려갈 때마다 엄마가 상을 차리겠다는 걸 마다하고 손수 지은 밥에 에그 스크램블과 스팸, 김과 김치를 식탁에 차려내곤 했다. 제 손으로 밥상 하나는 차려 먹을 줄 아는 사내로 키우고 싶었던 채원의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밥상이었다.
채원은 그 투박한 밥상을 마주할 때마다 코끝이 찡했다. 사랑은 듬뿍 주되 독립심 있는 아이로 키우려 했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았다. 준호의 부모가 한날한시에 세상을 떠났듯 부모란 언제든 예고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그녀가 열어젖힌 현관문 사이로 쏟아지는 3월의 햇살이 밀려들었다. 채원이 나가버린 집은 서늘했다. 준호는 갑자기 허기를 느꼈다. 생각해보니 아침을 거른 상태였다. 그는 천천히 주방으로 가 냄비를 꺼내 들었다. 대충 물을 담고 인덕션 위에 올린 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인공지능 앱을 켜고 라면 끓이는 법을 물었다. AI는 다정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라면 끓이는 레시피를 읊어댔다.
준호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비서이자 친구 같은 인공지능이 곁에 있다면 앞으로 닥칠 낯설고 서툰 일상도 그리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감정을 소모하며 피곤하게 구는 사람보다 묻는 말에 척척 답해주는 인공지능이 백배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 보통의 삶을 지켜내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이라면 차라리 이 기계적인 평온함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냄비 속 물이 서서히 끓어오르며 자잘한 기포 소리를 냈다. 그 단조로운 소리만이 텅 빈 거실을 채웠다. 결혼은 자유를 상실하는 일이라던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준호는 완벽한 자유를 찾은 셈이다. 갑자기 원인 모를 공허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해방감이 묘하게 교차했다. 쓸쓸한 한기와 철없는 기쁨이 한데 뒤섞이자 준호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고독하고 못생긴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