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대웅보전과 광응전(光膺殿),만세루를 중수하였다. 이후 영조는 1753년 보광사와 관련된 시문을 57절 20수를지었고, 1759년(영조 35) 3월에는 교서를 내려 ‘보광사는 능원의 수호사찰이며 일찍이 머물러 잤던 곳’이라고 공표하여 국왕 영조가 능행 시 들렀음을 알 수 있다. | 이때 대웅보전과 광응전(光膺殿),만세루를 중수하였다. 이후 영조는 1753년 보광사와 관련된 시문을 57절 20수를지었고, 1759년(영조 35) 3월에는 교서를 내려 ‘보광사는 능원의 수호사찰이며 일찍이 머물러 잤던 곳’이라고 공표하여 국왕 영조가 능행 시 들렀음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