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4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3번째 줄: 13번째 줄:
  
 
현재 지명은 '만장산 滿丈山'으로 불리고  찰 만 '滿'과 어른 장'丈' 뜻의 한자를 이용한다. 정상 북쪽의 두만리斗滿里라는 마을에는 조선시대 정승 황보인(皇甫仁)이 만장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ref> 파주문화원 지명유래집</ref>
 
현재 지명은 '만장산 滿丈山'으로 불리고  찰 만 '滿'과 어른 장'丈' 뜻의 한자를 이용한다. 정상 북쪽의 두만리斗滿里라는 마을에는 조선시대 정승 황보인(皇甫仁)이 만장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ref> 파주문화원 지명유래집</ref>
 +
 +
파주지명유래 전설지에는 개명산 서북맥으로 내려 뻗친 끝머리가 우뚝 솟아 말안장을 걸고 뛰어 가는 말모양의 형상을 하고 유명한 절육신 황보인 정승이 생장한 곳으로서 넓고 고귀한 뜻을 알리었다 하여 호칭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paki 2024년 5월 14일 (화) 13:17 (KST)
  
 
==등산로==
 
==등산로==
23번째 줄: 25번째 줄:
 
===만장산 명칭===
 
===만장산 명칭===
 
[[File:gg두만리위치.jpg|400px|섬네일|두만리 위치도, 구글어스 갈무리]]
 
[[File:gg두만리위치.jpg|400px|섬네일|두만리 위치도, 구글어스 갈무리]]
만장산의 지명유래를  알 수 없지만 '만장산滿丈山'이라는 단어는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1618년 간행된 양대박의 '청계집'과 1890년 기정진의 '노사집'의 시가와 산문에 포함되어 있다.  
+
만장산의 지명유래를  알 수 없지만 '만장산滿丈山'이라는 명칭은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1618년 간행된 양대박의 '청계집'과 1890년 기정진의 '노사집'의 시가와 산문에도 포함되어 있다.  
  
청계집에 "千丈層喦萬丈山。碧潭深處毒龍閑。何人更捻風前 笛。天際浮雲自往還。"라고 썼다. 이 문장을 번역하면 "천둥소리와 바람소리가 겹쳐 울리는 높은 산, 푸른 물이 고인 깊은 연못에는 독이 있는 용이 편안하게 누워 있다. 누가 다시 바람 앞에서 부는 소리를 낼까? 하늘의 끝을 떠다니는 구름은 스스로 오가며 변함없다."이다.
+
청계집에 양대박은 "千丈層喦萬丈山。碧潭深處毒龍閑。何人更捻風前 笛。天際浮雲自往還。"라고 썼다. 이 문장을 번역하면 "천둥소리와 바람소리가 겹쳐 울리는 높은 산, 푸른 물이 고인 깊은 연못에는 독이 있는 용이 편안하게 누워 있다. 누가 다시 바람 앞에서 부는 소리를 낼까? 하늘의 끝을 떠다니는 구름은 스스로 오가며 변함없다."이다.
  
이와 함께  '만장산滿丈山' 은 대부분 '웅장하고 높은산'을 의미하고 있으며  '산山'이 아닌 폭포, 낭떠러지, 산봉우리 등 에도 '만장滿丈'과 함께 쓴다. 예를 들면 만장폭포滿丈瀑布, 만장절애萬丈絶崖, 만장봉萬丈峯이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
이와 함께  '만장산滿丈山' 은 대부분 '웅장하고 높은산'을 의미하고 있으며  '산山'이 아닌 폭포, 낭떠러지, 산봉우리 등 에도 '만장滿丈'과 함께 쓴다. 예를 들면 만장폭포滿丈瀑布, 만장절애萬丈絶崖, 만장봉萬丈峯이라는 용어도 사용된다.
  
 
만장산이 해발 161m정도로 낮은 산임에도 '웅장하고 높은 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만장산이 해발 161m정도로 낮은 산임에도 '웅장하고 높은 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33번째 줄: 35번째 줄:
 
만장산이 웅장하게 보이는 것은 현재의 신산1리부터, 신산3리,  창만1리, 방축1리를 통과하는 조선시대 국도1호 구간이다 . 이 도로에서 만장산을 보면 도로변은 가파르지 않다가 4~ 5부 능선부터 정상까지는 산세가 높아지는 형세이어서 웅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만장산이 웅장하게 보이는 것은 현재의 신산1리부터, 신산3리,  창만1리, 방축1리를 통과하는 조선시대 국도1호 구간이다 . 이 도로에서 만장산을 보면 도로변은 가파르지 않다가 4~ 5부 능선부터 정상까지는 산세가 높아지는 형세이어서 웅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와함께 만장산 북쪽 끝자락에는 만장산의  "滿"자가 포함 두만리斗滿里 라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에 좌의정과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황보인이 만장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
이와함께 만장산 북쪽 끝자락에는 만장산의  "만滿"자가 포함된 두만리斗滿里 라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좌의정과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황보인이 만장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서는 황보인이 태어난 마을이 후덕하고 풍요로운 동네라는 의미로 북두칠성의 '두斗'와 찰 '만滿'로 두만리로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
전설에서 황보인이 태어난 마을이 후덕하고 풍요로운 동네라는 의미로 북두칠성의 '두斗'와 찰 '만滿'로 두만리로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만장산 명칭이 처음 지도에 나타난 것은 1842년이고 황보인이 1387년에 태어나 1453년 66세에 계유정난으로 피살되었다가  1746년 충신으로 복권된 것과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paki 2024년 5월 11일 (토) 15:38 (KST)
+
만장산 명칭이 처음 지도에 나타난 것은 1842년이다. 황보인은 1387년에 태어나 1453년 66세에 계유정난으로 피살되었다가  1746년 충신으로 복권된 것과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paki 2024년 5월 11일 (토) 15:38 (KST)
  
 
==관련 정보==
 
==관련 정보==

2024년 5월 14일 (화) 13:17 기준 최신판

광탄면 신산리와 창만리 경계 부분에 있는 해발 161.4m의 산이다.

신산4리에서 본 만장산

위치

만장산의 정상은 광탄면 신산리 산7-16, 산19, 산16-16, 산16-17번지에 위치하는 지점으로 창만리의 북쪽 방향과 신산3리, 신산2리 마을 방향으로 능선이 연결된다.

정상에서 북쪽으로는 금병산이 있고 그 사이에는 문산천이 흐른다. 남쪽 맞은편에는 조선시대 국도1호인 경의대로가 지나가고 분수천이 창만리 벌판으로 흐른다.

지명 유래

파주군읍지, 1890년

만장산에 대한 전설과 지명유래는 발견되지 않고 1842년에 발행된 경기지에 포함된 파주읍지에 '만장산滿場山'이라고 표기된 기록이 처음 나타난다. 그 후 1871년 '만장산滿丈山', 1890년 '만장산 滿丈山'으로 읍지 지도의 기록에 변화가 있었다.

현재 지명은 '만장산 滿丈山'으로 불리고 찰 만 '滿'과 어른 장'丈' 뜻의 한자를 이용한다. 정상 북쪽의 두만리斗滿里라는 마을에는 조선시대 정승 황보인(皇甫仁)이 만장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1]

파주지명유래 전설지에는 개명산 서북맥으로 내려 뻗친 끝머리가 우뚝 솟아 말안장을 걸고 뛰어 가는 말모양의 형상을 하고 유명한 절육신 황보인 정승이 생장한 곳으로서 넓고 고귀한 뜻을 알리었다 하여 호칭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paki 2024년 5월 14일 (화) 13:17 (KST)

등산로

등산로

만장산 중심으로 신산리와 창만리 주변의 능선을 이용하는 둘레길은 3km정도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와함께 광탄중고등학교 앞 공영주차장에서 광탄테니스장 앞 등산로입구 -만장산체육공원 테니스장 - 헬기장-만장산 광타파출소 방향의 등산로는 1.8km 거리에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여론여담

만장산 명칭

두만리 위치도, 구글어스 갈무리

만장산의 지명유래를 알 수 없지만 '만장산滿丈山'이라는 명칭은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 1618년 간행된 양대박의 '청계집'과 1890년 기정진의 '노사집'의 시가와 산문에도 포함되어 있다.

청계집에 양대박은 "千丈層喦萬丈山。碧潭深處毒龍閑。何人更捻風前 笛。天際浮雲自往還。"라고 썼다. 이 문장을 번역하면 "천둥소리와 바람소리가 겹쳐 울리는 높은 산, 푸른 물이 고인 깊은 연못에는 독이 있는 용이 편안하게 누워 있다. 누가 다시 바람 앞에서 부는 소리를 낼까? 하늘의 끝을 떠다니는 구름은 스스로 오가며 변함없다."이다.

이와 함께 '만장산滿丈山' 은 대부분 '웅장하고 높은산'을 의미하고 있으며 '산山'이 아닌 폭포, 낭떠러지, 산봉우리 등 에도 '만장滿丈'과 함께 쓴다. 예를 들면 만장폭포滿丈瀑布, 만장절애萬丈絶崖, 만장봉萬丈峯이라는 용어도 사용된다.

만장산이 해발 161m정도로 낮은 산임에도 '웅장하고 높은 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다른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만장산이 웅장하게 보이는 것은 현재의 신산1리부터, 신산3리, 창만1리, 방축1리를 통과하는 조선시대 국도1호 구간이다 . 이 도로에서 만장산을 보면 도로변은 가파르지 않다가 4~ 5부 능선부터 정상까지는 산세가 높아지는 형세이어서 웅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와함께 만장산 북쪽 끝자락에는 만장산의 "만滿"자가 포함된 두만리斗滿里 라는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좌의정과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황보인이 만장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에서 황보인이 태어난 마을이 후덕하고 풍요로운 동네라는 의미로 북두칠성의 '두斗'와 찰 '만滿'로 두만리로 이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만장산 명칭이 처음 지도에 나타난 것은 1842년이다. 황보인은 1387년에 태어나 1453년 66세에 계유정난으로 피살되었다가 1746년 충신으로 복권된 것과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paki 2024년 5월 11일 (토) 15:38 (KST)

관련 정보

링크 모음

사진 자료

가볼만한곳


카페34

Cafe34land.jpg

광탄면 신시가지 위치한 ‘시(時)’가 있는 카페로 건물 주소가 ‘광탄면 큰여울길 34’이다. 카페에 가면 주인의 시어가 담긴 시화를 보면서 인생의 향기를 느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자세히 보기


더보기



자료 출처


  1. 파주문화원 지명유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