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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는 한반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기도 서북단 (동경 127˚01′~126˚41′, 북위 37˚42′~38˚07′)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양주시, 북쪽으로는 연천군과 북한, 남쪽으로는 고양시와 접하고 서남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와 인접해 있다.
 
파주는 한반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기도 서북단 (동경 127˚01′~126˚41′, 북위 37˚42′~38˚07′)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양주시, 북쪽으로는 연천군과 북한, 남쪽으로는 고양시와 접하고 서남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와 인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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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연평균기온은 10.9°C, 1월 평균기온 -5.3°C, 8월 평균 기온 24.9°C이다. 연교차는 30.1°C로 여름은 덥고 겨울에는 추운 대륙성 기후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10년간 연평균기온은 10.9°C, 1월 평균기온 -5.3°C, 8월 평균 기온 24.9°C이다. 연교차는 30.1°C로 여름은 덥고 겨울에는 추운 대륙성 기후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지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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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구역==
고조선 이후 파주는 파주읍 지역인 술이홀과 교하지역인 천정구, 적성지역인 난은별, 장단지역인 야아로 나누어져 있었다. 술이홀 지역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영토였지만 475년 고구려와의 계속된 전쟁에  패하면서 파주지역 전체가 고구려의 영토가 됐다. 그 후 신라 진흥왕 때 고구려를 몰아내고 신라가 차지했으며 삼국통일 과정에서 파주는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었다.--1pi202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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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이후 파주는 파주읍 지역인 술이홀과 교하지역인 천정구, 적성지역인 난은별, 장단지역인 야아로 나누어져 있었다. 술이홀 지역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영토였지만 475년 고구려와의 계속된 전쟁에  패하면서 파주지역 전체가 고구려의 영토가 됐다. 그 후 신라 진흥왕 때 신라가 차지했으며 삼국통일 과정에서 파주는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었다.--1pi2023.1.27.
  
 
한반도에서 각축장이 된 것은 임진강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개경과 남쪽으로는 한양이 있어 파주가 누구의 땅인가에 따라 당대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요충지가 된 것이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고 각 지역을 주, 부, 군, 현(州府郡縣)으로 지명을 고치는데 이때 지금의 파주시인 적성지역을 적성현이라 불렀다. 그 뒤 장단, 적성, 파평 지역이 개성부 관할의 기현에 속하게 된다.
 
한반도에서 각축장이 된 것은 임진강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개경과 남쪽으로는 한양이 있어 파주가 누구의 땅인가에 따라 당대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요충지가 된 것이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고 각 지역을 주, 부, 군, 현(州府郡縣)으로 지명을 고치는데 이때 지금의 파주시인 적성지역을 적성현이라 불렀다. 그 뒤 장단, 적성, 파평 지역이 개성부 관할의 기현에 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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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9년(세조5년)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내향인 원평도호부를 [[파주목|파주목]]으로 승격시키면서 처음 파주(坡州)라는 지명이 만들어 졌다. 1895년(고종32년) 부군제로 개편되면서 [[파주군|파주군]]이 되었고 인구 15만명 이상의 기준으로 1996.3.1일 [[파주시|파주시]]로 승격됐다.
 
1459년(세조5년)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내향인 원평도호부를 [[파주목|파주목]]으로 승격시키면서 처음 파주(坡州)라는 지명이 만들어 졌다. 1895년(고종32년) 부군제로 개편되면서 [[파주군|파주군]]이 되었고 인구 15만명 이상의 기준으로 1996.3.1일 [[파주시|파주시]]로 승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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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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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목의 읍치가 있던 옛 서원군의 범위는 현재 파주시 광탄면, 문산읍. 월롱면. 조리읍. 파주읍 등 약 5개 지역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며 城(성)과 관련된 서원군의 이름으로『신증동국여지승람』파주목의 건치연혁 항목에 고구려 때의 (술이홀), 신라 때의 峯城(봉성) 등 2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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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산천 항목에는 서쪽 2리의 城山(성산), 고적 항목에는 城山古城(성산고성)이 기록되어 있다. 성산고성은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의 봉서산(215.5m) 정상 부근을 둘러싼 둘레 875m의 봉서산성이다.<ref>고지도를 통해 본 경기지명연구 237쪽, 국립중앙도서관, 2011.11.30일 발행 </ref>--2024년 5월 7일 (화) 22:0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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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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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파주목의 건치연혁에 파평현의 연혁이 기록되어 있고 파평현의 범위는 현재의 파주시 파평면과 법원읍 일대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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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하면 고적으로 동북 30리의 고파평현古坡平縣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파평면 마산리 벌말 일대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이 파평현과 동일한 파평산(496m)으로 순우리말 이름은 잣듸산이기도 하다. 여기서‘잣’은 城(성)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이름으로 주변에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f>서원군 각주 참조</ref>--2024년 5월 7일 (화) 22:17 (KST)
  
 
===파주목===
 
===파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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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 유래==
 
==지명 유래==
 
===술이홀===
 
===술이홀===
백제의 영토였던 술이홀(述爾忽)은 임진강 이남의 봉서산 중심의 지역으로 술미홀(述彌忽), 술이홀(述尒忽)이라고도 불렀다.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술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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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였던 술이홀(述爾忽)은 임진강 이남 봉서산 중심의 지역으로 술미홀(述彌忽), 술이홀(述尒忽)이라고도 불렀다. <ref>한국민족대백과사전, 술미홀</ref>
  
 
술이홀에서 '술(述)'은 '수리'와 같이 둥근 모양을 나타내며 한자화되면서  '봉(峯)'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이며 신라 경덕왕때 봉성현(峯城縣)이 됐다.
 
술이홀에서 '술(述)'은 '수리'와 같이 둥근 모양을 나타내며 한자화되면서  '봉(峯)'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이며 신라 경덕왕때 봉성현(峯城縣)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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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18일 (목) 15:48 기준 최신판

파주 지역에 대한 기록은 '중보문헌비고'[1]부터 나타나고 1459년 처음 '파주'라는 명칭이 생겼다.

파주목 관아 위치

위치

위치, 국립민속박물관

파주는 한반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기도 서북단 (동경 127˚01′~126˚41′, 북위 37˚42′~38˚07′)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양주시, 북쪽으로는 연천군과 북한, 남쪽으로는 고양시와 접하고 서남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와 인접해 있다.

서북쪽에는 임진강을 경계로 북한 개풍군과 마주하고 있다. 또한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서 조선시대 사행로인 의주대로를 비롯하여 남북을 잇는 경의선 및 개성과 서울을 연결되는 사통팔달의 지역이다.

파주는 서울에서 북서쪽으로 약 40㎞ 떨어진 가까운거리에 있으며 개성과도 20㎞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파주는 예로부터 개성과 서울 사이에 위치하여 송도의 동교, 한양의 서교로서 교통의 요지 및 수도 방위를위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지형

파주의 지형은 전형적인 동고서저의 형태이다. 이 지역의 지형은 임진강과 광주산맥, 마식령산맥에 의하여 이뤄졌다. 임진강의 하류에 자리 잡은 파주는 감악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낮은 구릉성 산지와 강 옆의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에는 광주산맥이 북동-남서방향으로 솟아 있고 북쪽으로는 동서방향으로 마식령산맥이 있다.

따라서 파주 지역은 동쪽이 높고 서북쪽이 낮은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인구분포 역시 산간지역인 적성, 법원 보다는 평야지대인 금촌, 문산, 교하 쪽이 높다.

파주는 강을 빼고 지형을 설명 할 수가 없다. 파주에는 동서로 흐르는 임진강과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한강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임진강은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총 연장 272㎞이며 이중 파주 구간은 약 75㎞이다.

유역면적은 8,135㎢이다. 임진강의 상류는 산지하천으로 유속이 급하여 연안에 평지가 거의 발달하지 못한 반면 중·하류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또한 임진강을 중심으로 지방하천이 30개소, 소하천은 76개소에 이른다. 하지만 파주의 하천은 대부분 임진강의 지류 하천의 역할을 하지만 장마철을 제외하면 거의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따라 서 소하천 유역은 임진강으로부터 양수를 하거나 저수지에 저장했던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다.

기후

파주의 기후는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경기북부의 내륙에 위치한 파주는 임진강, 한탄강, 한강 등 긴 하천을 끼고 있고 높고 낮은 산지와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집중호우가 잦은 곳이다.

서쪽인 임진강 하구 일대 및 한강 하구 일대는 거의 평지 지역이며 동쪽은 감악산, 소요산 등 800~1000m의 비교적 높은 산들이 산맥을 이루고 있어 서해 및 한강하구에서 서풍 또는 남서풍이 불 때 바람의 방향인 동쪽의 큰 산들과 부딪혀 강수효과를 강화하여 많은 양의 비를 가져온다. 또한 파주의 도시 또는 마을의 대부분은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형태로 형성되어 여름철에는 불안정한 대기상태가 자주 발생 한다.

최근 10년간 연평균기온은 10.9°C, 1월 평균기온 -5.3°C, 8월 평균 기온 24.9°C이다. 연교차는 30.1°C로 여름은 덥고 겨울에는 추운 대륙성 기후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행정 구역

고조선 이후 파주는 파주읍 지역인 술이홀과 교하지역인 천정구, 적성지역인 난은별, 장단지역인 야아로 나누어져 있었다. 술이홀 지역은 삼국시대에 백제의 영토였지만 475년 고구려와의 계속된 전쟁에 패하면서 파주지역 전체가 고구려의 영토가 됐다. 그 후 신라 진흥왕 때 신라가 차지했으며 삼국통일 과정에서 파주는 고구려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었다.--1pi2023.1.27.

한반도에서 각축장이 된 것은 임진강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개경과 남쪽으로는 한양이 있어 파주가 누구의 땅인가에 따라 당대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요충지가 된 것이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은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고 각 지역을 주, 부, 군, 현(州府郡縣)으로 지명을 고치는데 이때 지금의 파주시인 적성지역을 적성현이라 불렀다. 그 뒤 장단, 적성, 파평 지역이 개성부 관할의 기현에 속하게 된다.

조선시대에 파주는 모두 5개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즉 교하, 파평, 파주, 적성, 장단지역이다. 1398년에 파평현과 서원현(파주지역)이 합해 원평군이 되었다. 1414년에는 중앙관제와 지방군현제의 대대적 개편에 따라 교하현이 원평군에 소속되고 장단현은 임단현이 되었다. 이듬해 1415년에 원평군이 원평도호부로 승격됐다.

1459년(세조5년)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내향인 원평도호부를 파주목으로 승격시키면서 처음 파주(坡州)라는 지명이 만들어 졌다. 1895년(고종32년) 부군제로 개편되면서 파주군이 되었고 인구 15만명 이상의 기준으로 1996.3.1일 파주시로 승격됐다.

서원군

파주목의 읍치가 있던 옛 서원군의 범위는 현재 파주시 광탄면, 문산읍. 월롱면. 조리읍. 파주읍 등 약 5개 지역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며 城(성)과 관련된 서원군의 이름으로『신증동국여지승람』파주목의 건치연혁 항목에 고구려 때의 (술이홀), 신라 때의 峯城(봉성) 등 2개가 나온다.

이와 함께 산천 항목에는 서쪽 2리의 城山(성산), 고적 항목에는 城山古城(성산고성)이 기록되어 있다. 성산고성은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의 봉서산(215.5m) 정상 부근을 둘러싼 둘레 875m의 봉서산성이다.[2]--2024년 5월 7일 (화) 22:09 (KST)

파평현

『신증동국여지승람』파주목의 건치연혁에 파평현의 연혁이 기록되어 있고 파평현의 범위는 현재의 파주시 파평면과 법원읍 일대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고적으로 동북 30리의 고파평현古坡平縣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파평면 마산리 벌말 일대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이 파평현과 동일한 파평산(496m)으로 순우리말 이름은 잣듸산이기도 하다. 여기서‘잣’은 城(성)을 의미하는 순우리말 이름으로 주변에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2024년 5월 7일 (화) 22:17 (KST)

파주목

1459년 파주지역의 원평도호부가 파주목으로 승격되면서 현재 파주읍 중심으로 교하, 파평지역이 파주라는지명으로 자리잡게 됐다.

파주목은 모두 12면(面)에 131개 리(里)의 행정구역을 갖추었다. 행정 관아는 주내면(州內面, 현 파주리) 지역이다. 당시 파주목의 행정 관할 구역은 오늘날의 파주읍, 문산읍, 법원읍, 조리읍, 광탄면, 월롱면, 파평면 지역을 포괄했다.자세히 보기

파주군

1895. 6. 23일 제2차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진행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국을 23부(府) 337군(郡)으로 분할하면서 파주목은 파주군이 됐다. 이때 파주군은 한성, 파주, 교하, 적성, 고양, 양주, 포천, 영평, 가평, 연천, 광주(廣州)와 함께 한성부(漢城府) 관할이었고 장단군은 개성부 관할이다.

1914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통폐합이 이루어지면서 적성군이 연천군에 흡수되었고 교하군 전역이 파주군에 폐합되었으며 양주군, 고양군, 적성군의 일부가 파주군에 편입됐다.

1945년 해방 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자 종래 연천군 관할이던 적성면과 남면이 파주군에 편입되었고 이듬해 남면이 양주군에 편입됐다. 한국전쟁후 1963년에는 장단군 군내면에 속했던 백연리, 정자리, 조산리, 읍내리, 송산리, 공덕리, 방축리, 방목리가 임진면에 편입됐다.

1972년에는 장단군의 장단면, 군내면,진서면, 진동면이 파주군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에는 아동면이 금촌읍으로,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승격되어 2읍 9면체제를 갖추게 됐다.

1980년에 주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다시 주내읍이 파주읍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89년에는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승격됐다. 자세히 보기

파주시

파주목에서 파주군으로 개편되고 100여년이 지난 후 지방자치법 제7조의 규정에 따라 군 전체의 인구가 15만 이상이 되고 금촌읍, 문산읍이 각각 2만 이상의 인구가 충족되면서 1996.3.1일 도농복합시인 파주시로 승격됐다. 승격되면서 금촌읍을 폐지하고 금촌1동과 금촌2동을 신설하면서 3읍 11면 2행정동의 체제가 만들어 졌다.

2002년에는 조리면과 교하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5읍 4면 2동 1출장소의 체제가 되었다. 2011.7.25일 교하읍이 교하동, 운정1,2,3동으로 분동되고 금촌3동이 신설되어 4읍9면7동 1출장소 체제가 됐다.

교하와 운정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2023.1.1일자로 기존의 교하동을 교하동, 운정5동,운정6동으로 분할하고 운정1·3동을 운정1·2·3동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했다.이에 따라 파주시는 2023.1.1일 현재 4읍9면10동 446통리가 됐다.자세히 보기

지명 유래

술이홀

백제의 영토였던 술이홀(述爾忽)은 임진강 이남 봉서산 중심의 지역으로 술미홀(述彌忽), 술이홀(述尒忽)이라고도 불렀다. [4]

술이홀에서 '술(述)'은 '수리'와 같이 둥근 모양을 나타내며 한자화되면서 '봉(峯)'으로 변화된 것으로 보이며 신라 경덕왕때 봉성현(峯城縣)이 됐다.

파주

파주(坡州)의 '파(坡)'는 언덕이라는 한자이다. '주(州)' 조선시대 큰마을을 부르는 명칭이다. 이중 '파(坡)'는 지금의 파평면의 금파리와 장파리로 이어지는 장마루 언덕 모양때문에 불려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파주'의 어원은 언덕과 평지가 골고루 섞인 지형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 예로 파주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언덕 파(坡)’가 붙는 지명은 ‘마루’(언덕이라는 뜻)라 하여, 장파리는 장마루, 금파리는 금마루 또는 쇠마루로 불렀고, 동파리는 해마루로 불렸다고 한다.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파평'은 파주의 본산인 파평산(坡平山)과 영평산(鈴平山)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6]

관련 정보

행정구역 일람표

파주일람표1.png

파주일람표2.png


주변 명소



더보기



자료 출처


  1. 파주지역은 고조선이 한나라에 망한 후 한사군을 설치하면서 낙랑지역에 속했다.
  2. 고지도를 통해 본 경기지명연구 237쪽, 국립중앙도서관, 2011.11.30일 발행
  3. 서원군 각주 참조
  4.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술미홀
  5. 파주 인문학 산책, 최종환 前 파주시장
  6. 1995년 이혜은 집필
  7. 파주지역의 연혁/1997년 파주문화원 발행, https://memory.library.kr/items/show/210024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