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가 추진한 봉일천 지역의 근대문화 유산 발굴 프로젝트로 '봉일천 숨길'프로젝트라고도 한다.
지역 여건
조리읍은 파주의 관문으로 불리며 서울과 고양시와의 인접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봉일천'은 이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며 조리읍 대표하는 명칭이다..
통일로를 따라 파주를 진입하면, 파주삼릉, 하니랜드, 장곡리 저수지 등 다양한 명소를 만날 수 있다. 이와함께 미군기지로 유명했던 캠프하우즈가 인접해 있어 근대문화의 중심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될 계획이 있어 인구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봉일천 중심구역인 1, 6, 7리는 슬럼화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추진 과정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봉일천 1, 6, 7리 일대를 근대문화마을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마을 살리기 위해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 마을 이장, 전통시장 상인회, 주민자치위원회가 함께 구성한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를 중심으로 추진되며 '봉일천 숨길'로 명명됐다.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는 봉일천 지역을 근대문화마을로 변신시키고 지역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 근대문화거리는 봉일천주재소, 공릉장터 등 근대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조성될 예정이며, 협의회는 이 프로젝트를 3단계로 나눠 추진할 계획이다.
1단계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가 2019년 파주시 주민자치 우수 사례로 선정되어 받은 상금 500만 원을 활용해 마을 소식지를 발행했다.
2단계에서는 근대문화 유무형 역사자료를 활용한 축제콘텐츠를 개발하고 근대문화거리축제를 개최하기 위한 단계로 추진할 계획이다.
주민자치위원회와 전통시장 상인회 등 지역 공동체가 협력하여 공릉장터 재현, 근대의상 체험, 봉일천 숨길 탐방 등 다양한 활동을 운영하며, 스태프와 운영진은 일본 헌병, 독립군, 학생 등의 의상을 입고 축제를 기획했다.
3단계에서는 '봉일천 숨길'이 조성된 후 조지훈 시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봉일천 주막을 복원하고 공릉장터국밥을 재현하고 봉일천주재소를 근대문화전시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근대문화유산
파주 조리읍의 마을공동체협의회가 근대문화유산을 되살리기 위한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조리읍 내 8개의 근대문화유산인 봉일천주재소, 민영달불망비, 3.1운동기념비, 송암농장 터, 봉일천주막, 1사단 CP(봉일천초등학교), 대원교회, 봉일천시장(공릉시장)를 '봉일천 숨길'의 대상지로 정했다.
민영달불망비
조리읍 행정복지센터 앞에 위치한 '민영달불망비'는 조선 말기 문신이자 명성황후의 종형제인 민영달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유산이다.
이 유산은 민영달이 봉일천 지역의 민원 처리에 공헌한 데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민영달은 당대의 정객인 이완용과 이윤용을 조종하는 수완을 가진 인물로 전해지며, 1986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독립유공자로 지정됐다.
봉일천 주재소
조리읍의 봉일천주재소는 3.1운동 기념비의 건립 장소로, 3천 명의 시위대가 만세운동을 벌이던 중, 일본 순사의 총탄에 의해 6명이 순국한 역사적 장소이다.
봉일천 주재소에서는 1919년 3월 28일에 거사를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봉일천 헌병 주재소를 공격하자 일본 헌병들이 무차별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날의 시위는 파주에서 열린 3.1운동 중에서도 가장 대규모이고 치열한 시위로 알려져 있다.
3.1운동 기념비
파주 지역 최대 규모의 3.1운동 만세시위가 진행된 조리읍 봉일천리에는 1978년 3.1운동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이 기념비는 3단으로 된 대석 위에 비신을 올려놓고 있으며, 전면에 '파주 3.1운동 기념비'라고 새겨져 있다. 또한 기념비문 뒷부분에는 파주 지역 3.1운동 관련 인물들의 명단과 이 시위에서 희생된 군중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송암농장터
봉일천 4리에 위치한 송암농장은 1930년대 초에 조병학 씨가 설립한 곳으로, 경지 정리를 실시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장 중 하나이다.
이 농장은 경지 정리를 통해 소출이 증가하여 재산을 증가시킨 혁신적인 과학영농을 진행했다. 송암농장은 일본 학생들이 경지 정리 기법을 배우기 위해 견학에 온 곳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조병학 씨의 아들이 아버지의 유언을 받아들여 이 땅을 기부한 것으로 기록됐다.
대원교회
대원교회는 1949년에 파주에서 활동하던 주일학교 학생 36명이 국기배례를 거부하다가 퇴학처분을 받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의 주재로 국기배례를 주목으로 바꾸는 국민의례가 결정되어 학생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대원교회는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을 새롭게 정립하게 된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1사단 CP
봉일천은 6.25 전쟁 발발 직후 1사단이 관할하던 지역 중 하나로, 1950년 6월 28일에 봉일천국민학교에 1사단 CP(본부)가 설치됐다. 이 곳은 1사단이 6.25 전쟁 역사상 최초의 반격 작전을 계획한 장소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후 국군은 적과 맞서 끈질기게 싸웠지만 더 이상 항전이 불가함을 알고 후퇴를 결행, 경기 시흥에서 합치거나 지리산에 들어가 게릴라가 되자며 철수한 곳이 바로 봉일천이다.
1사단CP는 1사단이 6.25 전쟁 역사상 최초의 반격작전을 짰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봉일천 주막
한국 현대 시의 주류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봉일천주막’ 이다.
조지훈의 ‘봉일천주막에서’란 작품에는 ‘여기는 파주땅 봉일천리, 주막집 툇마루에 앉아 술을 마신다’라는 구절이 있다.
-봉일천 주막에서-
평양을 찾아간다. 임을 찾아서.
임이사 못 뵈와도 소식이나 들을까 하고 …….
비행기는커녕 군용트럭 하나도 봐주는 이 없는데
여비를 준다는 ‘북한파견문화반’ 그 명단에도 이름은 없다.
맨주먹으로 나서도 평양은 내가 먼저 가고 말리라.
따라나선 동행은 운삼이와 재춘이 녹번이 고개 넘어 몇리를 왔노
여기는 파주땅 봉일천리. 주막집 툇마루에 앉아 술을 마신다.
군가도 소리 높이 몰려가는 트럭 위엔 가득 탄 젊은이와 아낙네들의 사투리가 웃고 있다.
고향 가는 기쁨에 ……
나를 위해 세워주는 트럭은 하나도 없고
걸어서 파주땅에 오늘밤을 자야하나 평양을 가야 한다
봉일천 주막에 해가 지는데 … (1950.10월 파주군 조리읍에서)
봉일천 시장
공릉장은 '만기요람'에 광주의 사평장·송파장, 안성의 읍내장과 함께 경기도 4대 장터로 알려져 있다. 공릉장은 현재 봉일천 지역의 장터로 조정의 주도 하에 개설된 장터이다. ‘영조가 공릉·순릉·영릉 삼릉을 행행하면서 입구가 공허해 동구 밖에 장시를 개설해 능침의 공허한 곳을 방어하게 하고, 그 장세를 취해 장민의 민생을 지원했다(승정원일기, 고종 32년 윤 5월 을사)’고 기록돼있다. 영조가 특별히 설치한 조리읍의 봉일천시장은 2, 7일에 5일장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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