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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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은 국내에서 7번째로 큰 강으로 북한의 강원도 두류산에서 발원하여 교하에서 한강과 만나 서해로 유입된다.

임진강 화석정앞,파주위키

개요

임진강은 국내에서 7번째로 큰 강으로 북한의 강원도 두류산에서 발원해 한반도 중앙을 가로질러 황해북도 개풍군 임한리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파평면, 탄현면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든다.

강 이름도 지역마다 다르게 불려졌으며 한국전쟁 이후 임진강으로 통용되고 강 주변에는 유적지가 산재되어 있다.

지형 특성

임진강은 길이 254.6 km로 한탄강과 합류한 후 신천천, 문산천 등의 지류가 유입되고 개성시를 통과하는 설계천이 합류하고 한강 하류에서 만나게 된다

강폭은 370m 정도되고 강수가 적을 때는 폭 50여m 정도의 강물이 흐른다. 임진강은 추가령 구조곡의 용암대가 발달하여 높이 20m 이상의 암석 절벽의 주상절리를 이루는 곳이 있다. 일년 중 7월과 8월 우기에는 강폭 전체에 초당 6m/s의 속도에 급류가 형성되기도 한다.

겨울에는 영하의 기온으로 인해 강에 두꺼운 얼음이 형성되고 하류 지역에는 조수 작용으로 유빙 조각이 발생한다.

생태 특징

임진강은 중상류 지역 상당 부분은 군사분계선과 함께 비무장지대를 이루고 있어 강변의 수면 습지와 근처 산림이 하나의 생태권을 형성하고 있다.

중부 내륙에 위치해 희귀 곤충, 멸종위기의 양서류 및 파충류, 다양한 조류와 포유류, 39종의 담수어가 살고 있으며 금강초롱, 왜솜다리를 비롯한 110여 종의 특산 식물이 자란다.

임진강 주변에는 오리나무, 서어나무, 신갈나무와 같은 활엽수가 분포되고 강변을 따라 형성된 습지에서는 애기가래, 갈대, 도루박이, 창포와 같은 여러 수생 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세계적인 보호종인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날아들고 검독수리와 같은 맹금류의 서식지로 이용되고 있다. [1]

지명 유래

임진강은 순 우리말로 더덜나루(다달나루)라고 하며 한자로 표기하면 임진강이 됐다.임진강의 ‘임(臨)’은 ‘더덜’ 즉 ‘다닫다’라는 뜻이며 ‘진(津)’은 ‘나루’라는 뜻이다. 그밖에 ‘이진매’ 즉 ‘더덜매’(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라고도 했다.[2]

예로부터 임진강은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르게 불렸다. 적성 지역은 삼국시대에 칠중하 또는 호로하(瓠瀘河), 표하라고 불렀고 지금의 탄현 지역의 하류는 낙하라고 했다.

유적지

임진나루

파주시 문산읍 임진리 3-1번지 일원에 있는 임진나루는 임진강을 건너 북쪽의 진동면 동파리 동파나루와 연결되던 나루이다.

삼국시대로터 조선시대까지 개성과 한양을 잇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한 나루였다. 조선 건국으로 한양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려거나, 중국의 사신이 한양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했던 나루로, 임진강을 가로질러 남과 북을 연결하는 곳으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 기타 임진강 나루터

임진진

임진나루의 방어를 위해 입구와 주변에 축성된 성곽으로 조선 영조는 1755년에 군진인 임진진(臨津鎭)을 설치하고 관문에 진서문을 설치했다.

장산진

영조는 도성의 외곽 방어체계를 강화하고, 도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임진강 일대의 방어체계를 개편했다. 이에 임진나루는 임진진(臨津鎭)으로 바꾸고, 강의 하류에 있는 장산진(長山鎭)을 추가로 설치했다.

낙하진

탄현면 낙하리에 있는 나루터로 신증동국여지승람』(파주)에 임진도(臨津渡, 임진나루)의 하류에 있다고 소개됐다.낙하진은 서울과 개성간의 큰 길목으로 도승을 두어 관리하고 장단면 석곳리와 연결되어 있다. 자세히 보기

덕진산성

군내면 정자리 13번지에 위치한 덕진산성은 고구려가 처음 임진강 북변 85m 고지의 능선에 축조한 성이다.

성곽의 면적은 171,775㎡로 고구려 이후 통일신라 시대에 보축·개축되고 조선 시대에도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대에 외성을 덧붙여 쌓아 사용해왔다.

덕진산성의 토지는 국유지이었으나 1982.12.31일 '수복지역 내 소유자 미복구토지의 복구등록과 보존등기에 관한 법률' 의 특별법을 악용하여 개인 명의로 이전된 것을 파주시가 소송을 통해 토지 소유권을 국가로 환수했다. [3]

덕진산성은 그동안 파주시 향토문화재로 관리되다가 2017.1.17일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잔미성

연천지역의 호로고루성 맞은 편 적성 장좌리에 위치한 성으로 고구려와 백제가 110여 년동안 대치했던 곳이다.[4]

육계토성

백제초기에 축조된 성으로 임진강 남안의 적성면 주월리의 평지토성으로 2007년 10월 22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됐다.

사행곡류하천에 돌출부분에 위치하여 임진강을 건너는 가야울과 두지나루를 조망할 수 있는 군사요충지이다.

임진강 거북선

임진왜란 당시 왜구를 물리친 거북선보다 180년 이전에 제작된 거북선을 태종과 새종이 임진강에서 보았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조선왕조실록 태종편(태종 13년 2월, 1413년)에 .따르면 ‘태종과 세자가 임진도(현 문산 임진나루)를 지나다 거북선과 왜선이 훈련하는 상황을 구경했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화석정

파평면 율곡리 산 100-1번지에 위치한 화석정은 1443년(세종 25)에 이명신(李明晨)이 건립하였고 1478년(성종 9)에 이숙함(李淑瑊)이 화석정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이명신의 증손인 이이(李珥)가 공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냈던 곳으로 경기도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됐다.

임진팔경

조선시대 임진강 주위의 강변 경치와 명소를 17세기 南龍翼(남용익)의 임진강팔영시(臨津江八詠詩)로 소개한 곳이다. 남용익 노래한 8 곳의 명소는 화석정의 봄, 장암의 낚시와 송암의 구름, 장포의 가랑비, 동파역의 달,적벽의뱃놀이, 동원의 저녁눈, 진사의 새벽종으로 화석정을 중심으로 2km 정도의 범위에 있다.

양요당 팔경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탄현면 오두산의 양요당(兩樂堂)에서 본 여덟 경치를 성호 이익이 시로 남긴 장소이다. 양요당은 18세기 초반 교하 오두산과 검단산 사이(지금의 탄현면 성동리)에 오씨 성을 가진 인물이 지었다고 한다.

양요당이 위치했던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강과 임진강의 물이 합쳐져 바다로 내려가는 곳이 보이는 오두산 자락으로 추정하고 있다.

팔경시는 오두제월, 봉상품범, 송리석봉, 검단효종, 청교완가, 해포관어, 임악청람, 해문낙조를 노래하고 있다.[5]

문산포

문산포는 삼국시대로부터 문산읍 선유리 동초등학교 자리에 술이홀현, 서원군, 원평군 원평도호부 청사가 있을 당시 사목리 포구를 통하여 장단을 왕래하였으나 임진강의 강 흐름의 변동으로 문산읍 시가지 부근 하동으로 이전했다.

수운(水運)의 중심지로서 풍덕, 김포, 강화, 고림 포, 연천, 송도와 한양 등지를 황포 돛대로 왕래하면서 상선배와 농산물의 물물교환의 집결지로 다 시장이 형성되어 호황을 이루었다.

따라서 당동리에 여러 무당이 집결하게 되었으며 해마다 호대감 놀이를 베풀어 배를 부리는 사람들이 자주 이곳을 찾아온다. 이에 따라 조선조 개국 이후 원평도호 부 청사는 파주목으로 승격됨에 따라 파주읍 주내동으로 이전되었으나 경의선 복선으로 인하여 더 욱 번창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파주에 전해오는 임진강 관련 전설,

자연 지형

초평도

임진강의 유일한 섬으로 문산읍 장산리 북부에 위치하고 섬의 면적은 1.765km²이다. 대부분 논이었던 이섬은 한국 전쟁후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구역이 됐다

1872년 (고종9년)에 제작된 지방지도에 처음 나타난다.

일미도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탄현면 성동리와 북한의 관산반도 사이에 있었던 섬으로 여의도보다 2.2배나 크다.

1791년 조선시대 공문서에 의하면 일미도 (一眉島)를 왕실 소유로 하여 채소를 공급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가 1900년대 이후에는 기록에 나타지 않는다.

지류하천

임진강을 본류로 하여 흘러 드는 하천으로 문산천을 비롯하여 법원천, 독개, 설마천 등 전체 14개가 있다.

  • 임진강 지류하천

주요시설

임진강 철교

임진강을 횡단하는 서울-의주간의 경의선 철교로 1905년 단선철도로 완공됐다가 1938년부터 시작된 경의선 복선공사를 통해 복선으로 만들어졌다.

임진강 철교의 상행선 구간은 연장 701.84m의 강철 교량으로서 경간 60.6m의 트러스형 8개와 그 보다 짧은 규모의 18.3m의 판형 10개로 구성됐다.

자유의 다리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임진각 광장 앞 망배단 뒤편에 놓인 다리로 임진강 철교의 하행선과 상행선을 연결된 목조 교량이다.

1953년 자유의 다리로 공산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12,773명의 국군과 유엔군이 자유를 찾아 귀환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996년 12월 24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162호로 지정됐다.

통일대교

1993년 자유로에서 판문점까지 도로신설 및 확장공사가 추진되면서 임진강을 건너는 교량으로 신설됐다.

통일대교는 1993.12~1998.6.15일까지 공사가 진행됐고 길이 900m, 폭 24m, 왕복 4차로 778억원 사업비 소요됐다. 이 교량은 서울지방국토관리청과 육군 제1사단이 시행했고 건설 당시에는 ‘자유대교’, ‘임진대교’로 불리다가 ‘통일대교’라는 이름으로 개통됐다.

1998년 6월 16과 10월 27일 2차례에 걸쳐 정주영 전현대그룹회장은 총 1,001마리의 소 떼를 몰고 통일대교를 건너북한을 방문했다.

전진교

파평면 두포리와 진동면 하포리를 잇는 임진강 교량으로 1984년에 한국전쟁 당시 작전교량이었던 스푼빌교 위치에 설치됐다. 교량 명칭은 교량출입을 관할하는 육군 보병 제1사단의 '전진'의 구호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리비교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건설한 파평면 장파리와 진동면 용산리를 잇는 임진강 교량으로 1953년 미군에 의해 설치됐다.

휴전후 파평과 적성지역의 주민과 군부대의 민통선 관문으로 이용되던 리비교는2016년 위험교량으로 판정 받아 교량을 해체하고 재가설 됐다.

리비교 문화공원

신장남교

적성면 두지리와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를 잇는 임진강 교량이다.


비룡대교

적성면 주월리와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를 잇는 임진강 교량이다.

임진강 작전교량

한국전쟁 당시 미군측이 보급로 등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설치된 교량으로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파주와 연천에 이르는 임진강에 11개 교량을 설치했다.

교량의 이름은 주로 휴전선을 통과하는 철새의 이름따서 만들었다. 당시 설치된 교량은 자유의다리(Freedom Gate), 홍커(Honker,기러기 ), 스푼빌(Spoonbill,저어새), 리비교(Libby, X-Ray),위전(Widgeon. 홍머리오리), 틸교(Teal, 쇠오리)등 6개이다.

전설

임진나루 뱃사공

임진나루는 옛날 한양에서 송도를 거쳐 의주로 가는 국도로서 교통이 빈번한 곳이었다. 여기에서 뱃사공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옷차림과 거동만 보아도 어떠한 사람인지 잘 알아 맞추기로 유명했다.<자세히 보기>

고려 왕건 궁터

고려 궁터는 눌노천이 흐르는 하류 부근인 파평면 금파리 지역 임진강변 언덕에 있었다고 하며 이 는 옛날 파해평사현(坡吉史縣) 고을이 있었던 곳이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은 개성에 도읍할 당시 임진강변 주위에 토성을 쌓아 놓고 이 고을 청사 가 있던 자리에 아담한 이궁(離宮)을 건립하여 자주 왕래하였다고 한다. 이 궁에서 마주 바라다 보이 는 산중턱에는 궁궐의 임금님이 잡수시었다는 어수(御水)가 있다.

고려가 망할 당시 돌 위에 좀이 먹는다는 석두충(石頭蟲)과 말머리에 뿔이 난다는 마두각(馬頭角), 그리고 까마귀 머리가 희게 된다는 오두백(烏頭白)이라는 유언비어가 이곳에서 나와 떠돌기도 하였 다고 한다.

장단부사 아내의 죽음

1623년 광해군 당시 인조반정의 주도 세력이었던 장단부사 이서의 부인이 거사 결과를 기다리다가 나룻배에 깃발을 잘못 보아 임진강으로 투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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