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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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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최씨 문중의 선산 4만평이 월롱면 영태리에  있었고 최경창과 홍랑은 이곳의 문중의 묘지에 있었다.  이 선산은 1969년 캠프에드워드가 주둔하면서 국방부에 의해 미군부대 부지로 강제로 수용됐다. 영태리의  선산을 징발 당한 최씨 문중은 당시 교하면 다율리에 야산을 구입해 종중묘를 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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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최씨 문중의 선산 4만평이 월롱면 영태리에  있었고 최경창과 홍랑은 이곳 문중의 묘지에 있었다.  이 선산은 1969년 캠프에드워드가 주둔하면서 국방부에 의해 미군부대 부지로 강제로 수용됐다. 영태리의  선산을 징발 당한 최씨 문중은 당시 교하면 다율리에 야산을 구입해 종중묘를 이장했다.  
    
교하 다율리로 문중 묘를 이장하고 2000년 홍랑의 시가 발견되자 홍랑의 묘지에 문학과 관련된 학생이나 일반인들의 방문이 많아 졌다. 2005년 교하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종중 소유의 부지 1만평중 절반 가량이 수용됐다. 이 당시 문중에서는 나머지 땅도 언제 개발될지 모르다며 오산으로 이장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교하 다율리로 문중 묘를 이장하고 2000년 홍랑의 시가 발견되자 홍랑의 묘지에 문학과 관련된 학생이나 일반인들의 방문이 많아 졌다. 2005년 교하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종중 소유의 부지 1만평중 절반 가량이 수용됐다. 이 당시 문중에서는 나머지 땅도 언제 개발될지 모르다며 오산으로 이장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